1898년 충청남도 대덕에서 출생했다. 본관은 임천(林川)이며 호는 춘산(椿山)이다. 1918년 3월 경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2년 3월 경상전수학교를 졸업했다. 1923년 3월부터 경성지방법원 개성지청에 근무하면서 1925년 4월 판검사 특별임용시험에 합격했다. 1926년 해주지방법원 재령지청판사, 1928년 쇼와천황 즉위기념 대례기념장을 받았다. 1932년 평양지방법원판사, 1936년부터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청판사를 1940년까지역임했다. 1937년 훈6등 서보장을 받았고, 1940년 종5위에 서위되었다. 1941년대전에서 변호사를 개업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대전지방법원장에 임명되었고, 1948년 대구고등법원장이 됐으나, 그해 말 다시 변호사로 돌아갔다. 1952년 다시 대구고등법원장에 임명되고, 이듬해 대법관에 임명되었다. 대법관 재임중인 1954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겸직했고, 같은 해 제7대 법무부장관이 되었다. 1955년에는 사정위원회위원장으로서 6·25동란 이후 해이해진 국가기강을 바로잡는 데 기여했다. 1958년 법관회의의 추천에 의하여 사법부의 최고책임자인 제2대 대법원장이 되었다. 대법원장 재임중에는 법관연임문제와 사법직원 기강확립 등에 힘썼으며, 1960년 4·19혁명으로 같은해 5월 퇴임했다. 법전편찬위원회 위원장을 겸임했으며, 1963년 공증인사무소를 개업했다. 1975년 8월 27일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