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경유(景有)이고, 초명은 조우섭(趙宇燮)이다. 조부는 조제만(趙濟晩)이고, 아버지는 조득림(趙得林)이다.
1866년(고종 3) 정시(庭試) 병과(丙科)에 급제하였다. 1871년 홍문관의 부수찬·수찬·부교리 등을 지냈다. 1873년에는 진하겸사은정사(進賀兼謝恩正使) 이근필(李根弼)을 수행하여 서장관(書狀官)으로서 청국을 다녀왔다.
같은 해에 최익현(崔益鉉)이 대원군의 서원철폐에 대해 이를 통박하는 상소를 올리자, 그 내용에 신하의 본분을 망각한 불경한 언사(言辭)가 있다 하여 이를 처벌하자는 홍문관의 연명상소에 함께 가담하였다. 1874년 사헌부 장령(掌令) 등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