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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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후기
조선 중기에, 사옹원정, 연안부사, 종부시정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무민(無悶), 송호(松湖)
  • 일관(一貫)
인물/전통 인물
  • 본관한양(漢陽)
  • 사망 연도1611년(광해군 3)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종부시정
  • 출생 연도1549년(명종 4)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조정기 (창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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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사옹원정, 연안부사, 종부시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일관(一貫), 호는 송호(松湖) 또는 무민(無悶). 조면(趙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광필(趙廣弼)이고, 아버지는 연안부사 첨지 조징(趙澄)이며, 어머니는 영화정(永花正)이정주(李呈珠)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94년(선조 27) 부사과로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성균관전적에 제수된 이래 각 조 좌랑을 역임하였고, 접반관(接伴官)으로 명장(明將)을 수종하여 호남을 돌았다. 그 뒤 각 조의 정랑, 사헌부장령·남양부사·사옹원정·군기시정·연안부사·종부시정 등 내외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608년(광해군 즉위년) 종부시정으로 있을 때 종친들의 친제(親祭) 참여를 검칙하지 않았다는 사헌부의 상소로 교체되었다. 성품이 온후하고 독실하며 인정이 많았고, 친구들과 술마시기를 즐겼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지봉집(芝峯集)』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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