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후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전기에, 대사간, 도승지, 병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유보(裕甫)
인물/전통 인물
  • 본관평양(平壤)
  • 사망 연도1599년(선조 32)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도승지|병조참의
  • 출생 연도1540년(중종 35)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상일 (성균관대학교, 독문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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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대사간, 도승지, 병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평양(平壤). 자는 유보(裕甫). 조인생(趙麟生)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회(趙懷)이고, 아버지는 조경운(趙慶雲)이며, 어머니는 김응무(金應武)의 딸이다. 공조참판 조인득(趙仁得)은 그의 형이며, 우의정 김귀영(金貴榮)은 외삼촌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67년(명종 2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다음 일찍이 제주판관을 지냈는데 정사를 행한 이후로 여러 해 동안 쌓였던 폐단이 안개 걷히듯 없어졌다는 칭송을 들었으나 병으로 인하여 체직을 청하였다. 그 뒤 오랫동안 서용되지 않다가 1583년에야 출사를 명받고 홍문관교리에 임명되었다.

1587년 왜구가 침입하자 선유어사(宣諭御史)로 오랫동안 호남지방에 머물면서 전몰자(戰歿者)를 제사지내 주었으며, 생존자를 찾아 위로해 주고 전몰자의 집은 잡역을 면제해 주는 등 위문하고 돌아와 대사간·도승지·병조참의를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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