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사의(士義), 호는 양재(暘齋).
1869년(고종 6) 대사간과 승지를 거쳐 1871년 이조참판, 1875년 진위 겸 진향부사(陳慰兼進香副使)에 임명되었다.
그뒤 1876년 6월 5일 일본국 이사관(理事官) 미야모토[宮本小一]가 제물포에 도착하매 당시 행호군으로서 강수관(講修官)에 임명되었다. 따라서, 미야모토와의 접촉과정에서 선박의 항세(港稅) 및 화물 수출입의 관세를 면제하는 실책을 범하기도 하면서 전체적인 타협을 봄으로써, 같은 해 7월 5일 조일수호조규부록(朝日修好條規附錄) 및 무역규칙을 체결하였다.
1878년 산실청부제조(産室廳副提調)와 경기도관찰사를 역임하였으며, 특히 경기도관찰사 재직시에는 강화도의 지리적 중요성을 인식하여 강화도의 군비확충을 건의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