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의 휘하에서 활동한 의병.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14년(광해군 5)에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1621년 군자감판관(軍資監判官)이 제수되었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다. 오운(吳澐)·이준(李埈)·신지제(申之悌)·홍위(洪瑋) 등과 폭넓게 교유하였으며, 향리(鄕里)에서 실천적 학문 연마에 전념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丁卯胡亂)이 일어나자 관찰사(觀察使)를 방문하여 사재를 털어주면서 군량미(軍糧米)를 보충하게 하였으며, 후에 이 일로 인하여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임명되고 삼대(三代)가 추증(追贈)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 때는 칠십이 가까운 나이로 전쟁에 직접 참가하지 못함을 한탄하면서 집 뒷뜰에 축단(祝壇)을 쌓고 밤낮으로 난이 평정되기를 빌었다. 한편, 그런 와중에서도 영산서당(英山書堂)에서 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에 힘썼으며, 화의(和議)를 극력하게 배척하는 「척화소 斥和疏」를 짓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사월문집(沙月文集)』 2권 1책이 있다.
참고문헌
- 『사월문집(沙月文集)』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