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문지(文之). 문장에 능하여 9세 때 「채미론(採微論)」을 지었으며, 10세 때 조구명(趙龜命)으로부터 학문을 배웠다.
13세 때 경전에 통달하였으며, 내수(內修)를 위하여 금강산 등지로 돌아다니면서 불서(佛書)도 읽었다.
1747년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몸이 약하여 25세의 나이로 죽었다. 그의 학문은 입지위본(立志爲本)하고 치심위선(治心爲先)하였다고 하는데, 불교와 양명학·성리학에 밝았다.
시문집으로 『인암유고(忍庵遺稿)』가 1781년(정조 5)에 간행되었는데, 시·부(賦)뿐만 아니라 성리학·양명학·불교에 대한 그의 철학적·정치적인 견해가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