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대한제국기 궁내부협판, 평식원총재, 의정부찬정 등을 역임한 관료.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밖에 평식원총재(平式院總裁)·의정부찬정·판돈녕부사·기로소비서장(耆老所秘書長) 등도 역임하였다. 일제의 대한제국 강제병합 때 전 의정부찬정이라는 명의로 일본정부가 주는 은사금(恩賜金) 및 남작의 칭호를 거절하고 합방조서(合邦詔書)와 고유문(告諭文)을 찢었다. 병합에 항의하여 두 차례나 자결을 시도하였으나 가족들이 구원하여 실패에 그쳤다.
그 뒤 양주 사릉리(思陵里)에서 미망인이라 자처하고 은둔하였다. 1917년 스스로 월파거사라 칭하며 금강산 반야암(般若菴)에 은거 중 1919년 고종이 승하하자 상경하여 인산(因山)을 치르고 중국 허난성[河南省]으로 망명하였다. 7년 동안의 유랑 도중 둘째 아들 조남익(趙南益)의 사망소식을 듣고 귀국하여 봉선사(奉先寺)에서 기거하다가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 『고종실록(高宗實錄)』
- 『순종실록(純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기려수필(騎驢隨筆)』
- 『朝鮮統治史論稿』(田保橋潔, 成進文化社,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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