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구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 일제강점기
대한제국기 궁내부협판, 평식원총재, 의정부찬정 등을 역임한 관료.
이칭
  • 미경(米卿)
  • 월파거사(月坡居士)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풍양(豊壤)
  • 사망 연도1926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62년(철종 13)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상태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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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대한제국기 궁내부협판, 평식원총재, 의정부찬정 등을 역임한 관료.

개설

본관은 풍양(豐壤). 초명은 조석구(趙晳九). 자는 미경(米卿), 호는 월파거사(月坡居士). 판서 조봉하(趙鳳夏)의 손자로, 조동석(趙東奭)의 아들이며,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둘째 사위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80년(고종 17)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부승지·부제학·대사성·이조참의·규장각직제학·예조참판 등을 거쳤다. 1896년 궁내부특진관에 임명된 뒤 궁내부협판·서리대신사무(署理大臣事務) 등 주로 궁내부의 요직을 지내며 왕실의 의례를 담당하였다.

그밖에 평식원총재(平式院總裁)·의정부찬정·판돈녕부사·기로소비서장(耆老所秘書長) 등도 역임하였다. 일제의 대한제국 강제병합 때 전 의정부찬정이라는 명의로 일본정부가 주는 은사금(恩賜金) 및 남작의 칭호를 거절하고 합방조서(合邦詔書)와 고유문(告諭文)을 찢었다. 병합에 항의하여 두 차례나 자결을 시도하였으나 가족들이 구원하여 실패에 그쳤다.

그 뒤 양주 사릉리(思陵里)에서 미망인이라 자처하고 은둔하였다. 1917년 스스로 월파거사라 칭하며 금강산 반야암(般若菴)에 은거 중 1919년 고종이 승하하자 상경하여 인산(因山)을 치르고 중국 허난성[河南省]으로 망명하였다. 7년 동안의 유랑 도중 둘째 아들 조남익(趙南益)의 사망소식을 듣고 귀국하여 봉선사(奉先寺)에서 기거하다가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 - 『고종실록(高宗實錄)』

  • - 『순종실록(純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기려수필(騎驢隨筆)』

  • - 『朝鮮統治史論稿』(田保橋潔, 成進文化社,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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