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계당(季棠). 조석기(趙錫耆)의 아들이다.
1869년(고종 6)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870년 수찬, 1877년 이조참의, 1878년 승지, 1884년 대사성, 1890년 이조참판과 대사헌을 거쳐 판의금부사를 지냈다. 서도에도 능하여, 김해 가락국태조릉(駕洛國太祖陵)의 숭선전비석(崇善殿碑石, 高宗 甲申立 許傳撰)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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