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순유(舜惟). 조부는 한성판윤 조만원(趙萬元)이며, 아버지는 진사 조규년(趙奎年)이다.
1869년(고종 6)에 대사성에 올랐고, 1870년 이조참의, 1874년 우부승지, 1881년 이조참판, 1882년 대사헌을 지냈다. 그 뒤 1893년에는 식년감시의 이소(二所) 시관(試官)이 되어 과거를 관장하다가 한때 신지도(薪旨島)로 정배되기도 하였다.
1894년에 공조판서가 되었다. 청일전쟁 중에는 지중추원사로서 관서선유사(關西宣諭使)가 되어 전쟁피해가 심한 관서지방에 세제상의 감면과 군비확충 및 지방민을 안도하게 하는 공적을 세웠고 황해감사가 되었다. 그 뒤 1898년 의정부참찬·중추원의관·장례원경(掌禮院卿)·궁내부특진관, 1899년 태의원경(太醫院卿), 1901년 목청전중건도감제조(穆淸殿重建都監提調) 등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