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었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의 사찰.
내용
『삼국유사』에는 중생사와 관련된 종교적인 영험이 기술되어 있어 사찰의 위상과 역사적 변천상을 추정해 볼 수 있다. 특히 신라 말에 최은함(崔殷諴)이 관음보살에게 기도하여 아들 최승로(崔承老)를 얻었으며, 후백제의 견훤(甄萱)이 경주를 공격하였을 때에 무사히 아들을 구한 사례는 당시 중생사의 모습을 짐작하게 해준다. 곧 중생사는 현세구원적인 관음신앙의 도량으로서 존재하였으며, 사찰의 주요한 단월이 6두품에까지 확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어 992년(성종 11)에 중생사 주지 성태(性泰)가 단월이 없어 절을 유지할 수 없었던 어려움을 겪었는데 금주(金州) 사람들의 후원을 받았다. 이러한 기록은 최승로 집안과 중생사의 관계가 단절된 것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 『삼국유사(三國遺事)』
- 「삼국유사 탑상 편에 보이는 삼소관음중생사조에 대한 몇 가지 새로운 검토」(조범환, 『신라문화제학술발표논문집』36, 2015)
- 「나려시대 천룡사·중생사와 최승로 가문」(김재원, 『한국중세사회의 제문제』, 2001)
- 「삼국유사 삼소관음고」(장충식, 『전운덕총무원장화갑기념 불교학논총』, 1999)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