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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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시대 용천부사, 장연부사, 철산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 수지(受之)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병자호란
  • 본관충주(忠州)
  • 사망 연도1636년(인조 1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장연부사|철산부사
  • 출생 연도1591년(선조 24)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봉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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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용천부사, 장연부사, 철산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수지(受之). 고려의 명장 충의군(忠義君) 지용기(池湧奇)의 후손이며, 시직 지영수(池永洙)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지운(池芸)이고, 아버지는 사과 지경담(池景湛)이며, 어머니는 선교랑(宣敎郞) 김정현(金挺賢)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무과에 급제하여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영변통판으로 300여 군사를 이끌고 운산의 적을 기습, 패주시켰다. 이 전공으로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올라 용천부사가 되었으나 모함하는 자의 참소로 의주에 충군(充軍)되었다.

배소에 있을 때 가도(椵島)에 주둔한 명나라 장수 유흥치(劉興治)의 변란에 백의종군하여 큰 공을 세우고 장연부사가 되었다가 얼마 뒤 철산부사가 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체찰사 김류(金鎏)의 비장(裨將)으로서 지략을 발휘하였다.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적의 포위 속에 있을 때 김류에게 출전을 간청하여 임금의 허락을 받고 어영포수(御營砲手) 200여 명을 이끌고 나아가 싸우다 전원이 전사하였다. 패보를 접한 인조는 매우 슬퍼하고 병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를 추증하고 전사자를 수습하여 매장하게 하였다. 청주에 지여해를 기리는 충신각이 있으며, 광주(光州)의 병천사(秉天祠), 청원의 검암서원(儉巖書院)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송자대전(宋子大全)』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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