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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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
해방 이후 국악예술학교 교사,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초대상임지휘자 등을 역임한 국악인. 해금, 피리명인.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충주(忠州)
  • 사망 연도1979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909년
  • 출생지경기도 평택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보형 (전 문화재관리국, 음악학)
  • 최종수정 2024년 06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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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국악예술학교 교사,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초대상임지휘자 등을 역임한 국악인. 해금, 피리명인.

내용

본관은 충주(忠州). 경기도 평택 출신. 국가무형유산인 가야금산조 및 병창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받은 성금연(成錦鳶)은 그의 아내이다.

1918년에 이석은(李錫隱)에게 승무 · 검무 등 여러 춤을 배웠고, 1928년에 조학윤에게서 호적(胡笛)을 배웠다.

1930년에는 정태신(鄭泰信)에게 양금 · 단소 · 퉁소를 배웠고, 1931년에 지용구(池龍九)에게서 해금 · 풍류 시나위를 배웠으며, 양경원(梁慶元)에게 피리 삼현육각(三鉉六角)과 시나위를 배웠다.

1932년에는 김계선(金桂善)에게 대금 시나위를 배웠고, 1935년에는 지용주(池龍珠)에게 무악장단을 배웠으며, 다음해에는 박춘재(朴春載)에게 경기소리 · 서도소리를 배웠다.

1937년 조선음악연구소에 입소하여 악사가 되었고, 1938년에는 한성준무용단(韓成俊舞踊團)의 반주악사로 활약하였으며, 1946년에는 서울중앙방송국 전속국악사가 되었다. 1960년에는 국악예술학교 교사로서 유망한 신인들을 많이 길러냈다.

1966년에는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초대상임지휘자로 취임하였다. 1973년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시나위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가, 1975년 해외이민으로 지정이 해제되었다. 해금산조와 피리 시나위를 통한 피리산조의 길을 열게 한 뛰어난 민속음악인 중의 하나이다.

참고문헌

  • - 「진쇠장단 외 11장단」(박헌봉, 『중요무형문화재지정조사보고서』28, 문화재관리국,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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