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훈련소는 근로자들이 직업 활동에 효율적으로 적응하고, 산업계에 인력을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직업 훈련을 실시하는 기관이다. 직업 훈련은 기존 관행 및 다양한 법에 의해 각각 다른 목적과 형태로 운영되어 왔으며, 직업 훈련 사업이 체계적으로 정비된 것은 「직업훈련법」이 제정된 이후이다.
「직업훈련법」은 당시 학교 밖에서 실시되는 기술 인력 개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따라 제정되었다. 1962년부터 시작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인해 제조업을 포함한 광공업 부문의 성장이 두드러지는 방향으로 산업과 고용 구조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공업화 지향 기조는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서도 지속되었으며, 이에 따라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성장 주도 부문에서 기능 인력의 대량 공급이 필요해졌다. 이러한 산업화 정책에 따라 사회 안정의 범주에서 운영되고 있던 직업 훈련은 실업계 학교 교육과 병행하여 공업 기술 인력 공급을 위한 직업 훈련으로 전환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러한 필요성에 따라 1967년 1월 16일, 「직업훈련법」이 제정 및 시행되었다. 향후 1973년에 개정된 「직업훈련법」에 따르면 직 업훈련은 크게 공공 직업 훈련과 사립 직업 훈련으로 구분되었다. 동법에 따르면 공공 직업 훈련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또는 특별법에 의하여 설치된 법인이 실시하는 직업 훈련으로서 노동청장이 인정하는 직업 훈련을 말한다. 사립 직업 훈련은 사기업에서 실시하는 사내 직업 훈련과 특별법에 의하여 설치된 법인 이외의 비영리법인이 실시하는 직업 훈련으로서 노동청장이 인정하는 직업 훈련을 말한다. 공공 직업 훈련과 사립 직업 훈련은 보건사회부령이 정하는 바에 의해서 노동청장에게 인정을 신청하고, 그 능력과 조건이 합당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직업 훈련으로 승인될 수 있도록 하였다. 이후 1977년에 「직업훈련기본법」이 시행됨에 따라 사립 직업 훈련의 범주는 사라지고, 기존 사립 직업 훈련의 범주에 있던 사업 내 직업 훈련과 인정 직업 훈련이 분리되어 구분되기 시작했다. 1999년 「직업훈련기본법」이 폐지되고, 「근로자직업훈련촉진법」이 시행된 이후로 직업 훈련의 구분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였지만, 기본적으로 공공 직업 훈련, 사업 내 직업 훈련, 인정 직업 훈련의 구분 체계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서 각 직업 훈련을 운영하는 주체들은 통상 직업 훈련 기관이라는 명칭으로 통용되지만, 2000년대 이전까지는 직업훈련소라는 명칭이 통용되었다. 따라서 공공 직업 훈련을 운영하는 기관은 공공 직업 훈련소, 인정 직업 훈련을 운영하는 인정 직업 훈련소라고 공공연히 칭하였다.
공공 직업 훈련을 담당하던 직업훈련소는 국립 직업 훈련원과 공공 직업 훈련소, 농촌 직업 훈련소로 구분하여 살펴볼 수 있다.
국립 직업 훈련원인 중앙 직업 훈련원의 변천은 다음과 같다. 중앙 직업 훈련원은 노동청 직할 공공 직업 훈련소로 1968년에 개원하여 기계공, 기계 조립공, 용접공 등 기능사 양성 과정을 운영하였고, 1970년부터는 2년 과정인 교사 양성 과정을 개설, 고등학교 졸업자를 대상으로 직업 훈련 교사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1977년 4월 중앙 직업 훈련원은 대통령령에 의한 직제 개정을 통해 국립 중앙 직업 훈련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국내 유일의 직업 훈련 교사 전담 양성기관인 국립 교육기관의 기능을 더욱 확고히 했다. 국립중앙직업훈련원은 1992년 인천기능대학으로 개편되었고, 2005년 「기능대학법」과 「한국산업인력공단법」의 개정을 통해서 2006년 한국폴리텍대학으로 통합 · 출범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한국폴리텍대학 인천캠퍼스가 국립 중앙 직업 훈련원을 전신으로 한다.
공공 직업 훈련소의 변천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최초로 설립된 공공 직업 훈련소인 한독 부산 직업 훈련원은 1966년 체결된 한독 기술 협력 협정 정신에 입각하여 설립되었다. 1967년 3월 한국과 독일 양국 대통령은 기술 협력 사업에 대한 공동 성명을 발표했으며, 이 사업의 일환으로 부산에 직업 훈련원을 설립하기로 합의했고, 1971년부터 한독 부산 직업 훈련원을 개원하여 노동부 직할 3년 과정을 통해 정규 기능공 훈련생을 교육하기 시작했다. 1973년 6월부터는 야간 성인 근로자 실습 교육도 시작되었다. 한독 부산 직업 훈련원 개원 이후에도 미국, 일본, 벨기에 정부의 지원으로 직업 교육 훈련의 장이 점차 확산되었다. 1973년에는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바탕으로 서울에 정수 직업 훈련원이 설립되었으며, 1976년에는 한국과 일본 정부 간의 협정에 따라 대전 직업 훈련원이 설립되었고, 같은 해 벨기에 정부의 지원으로 한백 창원 직업 훈련원이 설립되었다. 이후 직업 훈련원은 점차 확대되어 1980년대 초반까지 전국 26개 직업 훈련원이 개교하였다. 훗날 1994년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직업 훈련 개편에 의해서 직업 훈련원의 일부는 기능 대학으로 개편되었고, 나머지 일부는 직업 전문학교로 개편되었다. 여기에 직업 훈련원을 거치지 않고 설립부터 기능 대학 및 직업 전문학교였던 직업 훈련소를 모두 포함하여, 기능 대학 및 직업 전문학교는 2005년 「기능대학법」과 「한국산업인력공단법」의 개정을 통해서 2006년 한국폴리텍대학으로 통합 · 출범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농촌 직업 훈련소의 변천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새마을운동의 전개로 농가 개량 사업이 전개되고 농업 인구의 도시권 전입에 따라 농촌 지역의 직업 훈련 사업이 촉진되면서, 1969년부터 3년에 걸쳐 광주, 논산, 칠곡, 이리(현 익산), 김포, 음성 등 총 6개소의 농촌 직업 훈련소가 시범적으로 설치되었다. 농촌직업훈련소는 지방자치단체인 각 시도가 노동청의 지원을 받아 설치 및 운영하였는데, 개소 초기에는 미국의 평화봉사단에서 파견된 단원들이 각 훈련소에 2년간 배치되어 훈련생을 지도하고 교사 업무를 지원하였지만, 향후 지방 자치 단체의 전문성 결여, 전문 인력 확보의 곤란 등을 이유로 1987년부터 1988년에 걸쳐 진주의 경남 직업 훈련원을 제외한 농촌 직업 훈련소가 한국 직업 훈련 관리 공단(현 한국 산업 인력 공단)으로 이관 · 통합되었다.
사립 직업 훈련을 담당하던 직업 훈련소는 사업 내 직업 훈련소와 인정 직업 훈련소로 구분하여 살펴볼 수 있다.
사업 내 직업 훈련소의 변천은 다음과 같다. 1967년 직업 훈련 사업 계획에 따르면 사업 내 직업 훈련은 기능공 양성 훈련, 감독자, 관리자 훈련, 통신 훈련 및 해외 기술자 단기 훈련으로 구분되었다. 사업 내 직업 훈련의 대표 훈련인 기능공 양성 훈련은 인정 직업 훈련소가 기능공을 양성할 경우 실습 재료비와 교사 인건비를 보조하는 조건으로 실시 희망 기업을 모집하여 운영토록 하였는데, 1970년 보조금이 중단되자 사업 내 직업 훈련 참여 업체가 급격히 감소하였다. 이는 훗날 사업 내 직업 훈련 실시 의무제 도입의 계기가 되었으며, 1974년 「직업훈련에관한특별조치법」, 1976년 「직업훈련기본법」과 「직업훈련촉진기금법」이 제정되어 기업체는 의무적으로 기능 인력을 양성하도록 하였다. 사업 내 직업 훈련 실시 의무제는 1999년 「근로자직업훈련촉진법」 제정에 따라 폐지되었고, 모든 산업장은 고용보험 직업 능력 개발 사업의 적용을 받게 되었다. 이에 따라 기업은 기존 정부의 의무 부과에 의한 훈련 실시 기조에서 벗어나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훈련들을 자발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되었으며, 모든 사업장이 훈련 기준에 따라 훈련 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사업 내 직업 훈련의 방향성과 기능이 변화해 감에 따라 직업 훈련소라는 명칭은 기업에 따라 연수원, 인재원, 교육원, 인재 개발원 등 다양하게 변화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인정 직업 훈련소의 변천은 다음과 같다. 인정 직업 훈련이라는 용어는 1976년 직업 훈련 사업 계획 수립 때부터 사용하였지만, 그 때에는 사업주가 사업 내 직업 훈련을 노동청의 인정을 받아 각종 지원을 받으면서 시행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그 후 1973년에는 직업 훈련 실시 주체에 따른 직업 훈련 형태를 크게 공공 훈련과 사립 훈련으로 구분하고, 사립 훈련은 다시 비영리법인체 훈련과 사내 훈련으로 나누었고, 이들 사립 훈련원들이 대부분 노동청으로부터 인정을 받아 실시하였으므로 비영리 법인체나 사내 훈련을 구체적 훈련소로 부를 때에는 인정 직업 훈련소라고 하였다. 1977년 사업 내 직업 훈련이 본격화되면서부터 법인체 직업 훈련은 인정 직업 훈련이라는 별개의 영역으로 분리되어, 직업 훈련법이 처음 제정될 당시의 인정 직업 훈련과는 다른 개념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1978년에는 인정 직업 훈련소가 모두 33개였으며, 사회복지법인이 12개, 일반 비영리법인이 21개였다. 민간에 의한 직업 훈련 사업의 참여를 유도하고자 1981년 개정된 「직업훈련기본법」에 따라 개인도 인정 직업 훈련을 실시할 수 있도록 기회를 확대하자, 인정 직업 훈련소의 수는 크게 증가하였다. 인정 직업 훈련소는 「직업훈련기본법」이 폐지되고 「근로자직업훈련촉진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동일한 기조로 운영되었으며, 2004년 개정된 「근로자직업능력개발법」에 따라 그 명칭이 지정 직업 훈련 시설로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