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온 나라 및 국도와 각 고을을 뒤에서 진호(鎭護)하는 큰 산.
개설
연원 및 변천
내용
만약 혈장 뒤에 높은 산이 있더라도 그 산의 갈라진 줄기가 많아 혈장과 상당한 거리를 둔다면 이런 산은 진산이라 할 수 없고, 주필산(駐蹕山)이 된다. 진산은 북현무(北玄武)에 해당된다. 진산과 주산을 구분하는 경우도 있는데 서울의 경우 삼각산(三角山)을 진산, 백악산(白嶽山)을 주산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중국이나 고려에서는 일부 군현에만 진산이 존재하였으나, 조선시대에는 대다수 군현에 진산이 선정되었다. 공간적 특징을 보면 조선시대의 진산들은 다수가 풍수적 주산(主山) 혹은 조산(祖山)을 중심으로 하는 읍기(邑基) 배후의 산이었다. 고려시대의 지방군현은 개경과 달리 치소가 산성 형태의 치소성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풍수적 형국을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읍기배후의 산을 진신으로 선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여말선초를 지나면서 치소가 산을 후면에 두면서 평지에 위치한 경우가 많아졌고 읍치의 공간적 구조도 도성 즉 한양을 모델로 변하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택리지(擇里志)』
- 『한국(韓國)의 풍수지리(風水思想)』(최창조, 민음사, 1984)
- 「조선시기(朝鮮時期) 진산(鎭山)의 특징(特徵)과 그 의미(意味) -읍치공간(邑治空簡) 구조(構造)의 전환(轉換)의 관점(觀點)에서-」(최종석, 『조선시대사학회(朝鮮時代史學報) 46』, 2008)
- 「경상도(慶尙道) 읍치(邑治) 경관(景觀)의 진산(鎭山)에 관한 고찰(考察)」(최원석, 『문화역사지리(文化歷史地理)』 15(3),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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