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산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팔판동·삼청동·부암동·청운동·궁정동과 성북구 성북동에 걸쳐 있는 산이다. 서울의 주산으로 백악산, 면악산, 공극산 등으로 불렀다. 서울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장벽으로 조선시대 그 산세를 따라 도성이 축조되었다. 경치가 좋고 왕궁 및 관청과 가까워서 왕족과 사대부들이 많이 거주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주로 백악이라고 불렀는데 일제강점기에 북악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에 2009년 명승으로 지정하면서 ‘서울 백악산 일원’으로 정하였다. 1968년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는데 최근 북측면 구간은 공개되었다.
북악산은 높이 342m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서울의 주산(主山)이다. 서쪽의 인왕산(仁王山, 338m), 남쪽의 남산(南山, 262m), 동쪽의 낙산(駱山, 125m)과 함께 서울의 사산(四山) 중 하나로, 북쪽의 산으로 일컬어졌다.
남산에 대칭하여 북악이라 칭했다. 조선시대까지 백악산(白岳山), 면악산(面岳山), 공극산(拱極山), 북악산(北岳山) 등으로 불렸고, 특히 조선시대에는 주로 백악 또는 백악산으로 불렸으며 일부 북악이라고 불렸다.
북악산은 북한산의 남쪽 지맥의 한 봉우리에 해당한다. 산경의 흐름을 보면 한북정맥(漢北正脈)의 끝자락인 북한산 보현봉에서 서남 방향으로 형제봉을 거쳐 북악터널 위의 보토현(補土峴)으로 이어진다. 이어 표고 328m의 봉우리와 팔각정 휴게소 앞 능선을 따라 북악 뒤편에 구준봉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서울의 부주산(副主山)인 응봉(鷹峰)으로 이어져 경복궁의 배산인 북악에 다다른다.
북악산의 식물은 총 208종이고 그 중 나무는 81종이 있다. 교목류는 소나무, 팥배나무, 때죽나무, 산벚나무 등이 있고, 관목류는 진달래, 철쭉, 쥐똥나무, 국수나무 등이 있다. 침엽수로는 소나무가 대부분이며, 활엽수는 참나무 등 여러 종류가 섞여 자라고 있다. 그 외 성곽 주변에 아까시나무, 은수원사시나무, 리기다소나무 등 토사 유출을 막기 위하여 심은 나무와 최근 조경수로 심은 스트로브잣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 팥배나무 군락은 숙정문(肅靖門) 일대를 중심으로 분포한다.
북악산에서 청계천이 발원하는데, 2005년 11월 종로구청에서 조사한 청계천 발원지는 종로구 청운동 자하문 고개에 있는 최규식 경무관 동상에서 북악산 정상 쪽으로 약 150m 지점에 있는 약수터이다. 또한 북악산 동쪽 촛대바위 부근의 해발 245m 지점(동경 126°58′41.8″ 북위 37°35′34.4″)이 청계천의 최장 발원지라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인왕산 · 북한산 · 낙산 · 남산 등과 함께 서울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장벽의 구실을 한다.
서울 성곽은 북악산을 중심으로 축조되었다고 한다. 이 성은 1395년(태조 4)에 궁궐이 낙성된 뒤 같은 해 1월 기공식과 함께 착공되었다. 정도전(鄭道傳)은 성저(城底)를 측정(5만 9500자)하고 이를 97구로 나누어 각 1구를 약 600자로 하였으며, 각 구마다 천자문(千字文)의 글자로 번호를 붙였다. 다시 말하면 북악산의 정상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 일주하면서 천(天) · 지(地) · 현(玄) · 황(黃)……의 순서로 글자를 붙여나가다가 95번째 글자인 조(弔)자에 이르러 북악산에 도달하도록 하였다. 현재도 산 능선에는 옛 성벽이 원형대로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조선시대 북악산 기슭은 왕궁 및 관청과 가깝고, 또 경치가 좋았던 관계로 왕족과 사대부들이 많이 거주하였고 별서가 많았다. 그리고 많은 문인과 화가들은 이 일대의 빼어난 경치를 그림과 시문으로 남겼다. 숙정문 북서쪽 약 400m 지점에는 촛대바위가 있는데, 일제 때 이 바위 상단부에 쇠말뚝을 박았었고, 광복 후 이 바위의 쇠말뚝을 제거하고 우리 민족의 발전을 기원하는 촛대를 세우며 이름을 ‘촛대바위’라 정하였다. 현재는 쇠말뚝을 제거한 부분이 콘크리트 기중으로 마감되어 있다.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은 2007년 북악산 일대를 사적 및 명승지로 지정하였다가 2009년 명승으로 지정하였다. 명승 지정 명칭은 조선시대 도성과 도성 축성의 개념인 내사산(內四山 : 백악산, 인왕산, 낙산, 남산) 보존의 의미를 되살리고, 조선시대 각종 고지도 및 문헌 등 사료에 전하는 ‘백악(白岳)’의 지명을 살리기 위해 “서울 백악산 일원”으로 정하였다. 즉 일제 강점기 이후 불린 북악산이란 이름 대신에 조선시대에 가장 많이 불린 백악산으로 회복시키기로 한 것이다.
북악산 일원은 현재 사적으로 지정된 서울 한양도성(사적, 1963년 지정)과 서울 부암동 백석동천(사적, 2005년 지정), 대은암(大隱岩)과 부아암(負兒岩) 등이 있으며, 한양의 후현무(後玄武), 북쪽 주산(主山)으로서 조선왕조가 도성을 정하였던 정치적 사상과 지형적 기본원리를 보여주고 있다.
서쪽 산기슭과 인왕산과의 사이의 안부(鞍部)에는 서울 사소문(四小門)의 하나인 창의문(彰義門 : 일명 자하문)이 남아 있다. 창의문에서 정릉의 아리랑고개에 이르는 북악스카이웨이는 창의문, 팔각정, 풀장 등을 연결하는 관광도로로 울창한 숲과 서울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조망이 좋은 경승지이다. 북악산의 남동쪽 산기슭에는 삼청공원(三淸公園)이 있고, 동쪽에는 숙정문이 있다. 숙정문은 조선의 도성 4대문 가운데 정북에 위치한 문이며 속칭 북문(北門)이다. 이 문은 1396년(태조 5) 백악산의 동쪽 고갯마루에 세웠는데, 도성 북쪽 방향을 출입할 때 이용하였다.
1968년 1 · 21사태 이후 북악산 지역이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었던 것이, 서울성곽 백악산(북악산) 일원 전면 개방 계획에 따라 일차적으로 2006년 4월 1일숙정문과 함께 삼청터널 북쪽 홍련사(紅蓮寺)에서 도성(서울 성곽)을 따라 촛대바위까지 약 1.1㎞가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2020년 11월 1일부터 청와대 뒤편 북악산 북측면 구간이 개방되었다.북측면 개방으로 서대문구 안산에서 인왕산과 북악산, 북한산으로 이어지는 구간을 중단없이 산행할 수 있게 되었다. 문화재청이 2009년 명승으로 지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