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

복원 후 청계천
복원 후 청계천
자연지리
지명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북악산ㆍ인왕산의 부근에서 발원하여 시가지 중심부를 동쪽으로 흘러 중랑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정의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북악산ㆍ인왕산의 부근에서 발원하여 시가지 중심부를 동쪽으로 흘러 중랑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개설

개천(開川)이라고도 하였는데 지금은 복개되었다가 복원되어 종로구 동아일보사 건물 앞에서 시작되는 하천으로 거듭났다. 길이 10.84km, 유역면적 59.83㎢이다.

명칭 유래

상류는 경복궁 서북의 백운동 부근을 흐르는 청풍계천(淸風溪川)이며, 지류인 옥류동천(玉流洞川)ㆍ누각동천(樓閣洞川)과 남산에서 발원하는 3개의 지류를 합친다.

원래 본류ㆍ지류의 구별 없이 모두 합쳐 청풍계천이라 하던 것이 청계천이라 불리게 되었다.

자연환경

청계천의 물은 삼수구(三水口)를 나와 중랑포(中浪浦)에서 중랑천에 유입, 서쪽으로 흐름을 바꾸어 한강으로 들어간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왕조의 한양 천도 당시 이 내[川]는 자연 하천 그대로여서 토사의 퇴적이 심하였고 양안 민가에서 흘러나오는 하수로 불결하였다. 그리고 여름철이 되면 물이 늘어 침수가 심하였다.

1411년(태종 11)에는 개거도감(開渠都監)을 두어 개거 공사를 시작하였고, 그 뒤 영조 때에도 준설공사를 대대적으로 하였으며, 양안의 석축도 쌓았다. 준설 공사는 그 뒤에도 계속되었는데 특히 영조 때의 석축과 유로 변경 공사는 지금의 도시 계획적 견지에서 보아도 훌륭한 공사였다.

이 개천에는 모두 24개의 다리가 있었는데 광교(廣橋)ㆍ수표교(水標橋)ㆍ관수교ㆍ오간수교(五間水橋) 등이 유명하였다. 그 중 수표교는 수위 측정을 위한 수표석(水標石)과 함께 유명하다. 청계천 다리에는 조선 시대 전설과 풍류를 말하는 세시풍속이 있는데 연날리기와 답교(踏橋)는 특히 유명하다.

유서 깊은 청계천은 광복 후 급속도로 발전하는 서울의 교통 문제로 1958년 복개가 시작되어 1961년 완공되었다. 오늘날 청계천 위에는 너비 50m의 청계천로가 만들어졌고 그 위에는 광교에서 청계천 8가에 이르는 고가도로가 건설되어 도심 교통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현황

청계천은 2003년 7월부터 2005년 9월 30일까지 고가도로를 철거하고 복개를 걷어내어 광화문 동아일보사로부터 성동구 신답철교에 이르기까지 5.8km의 구간이 복원되어 산책로와 녹지 등이 설치되었다. 복원된 청계천에 흐르는 물은 본래 지류에서 유입된 물이 아니라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의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이용하여 조달하고 있다.

참고문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서울육백년사(서울六百年史)』 1(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77)
『한국지명총람(韓國地名總攬)』(한글학회, 1966)
「도시재생 전환기제로서 청계천 복원사업의 역할과 성과에 관한 연구」(양윤재, 『도시설계(都市設計)』 제9권 제4호, 통권 제33호, 2008)
청계천홈페이지(http://cheonggye.seoul.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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