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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한성(漢城)의 개천을 다스리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
제도/관청
  • 설치 시기1411년(태종 1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원영환 (강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3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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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한성(漢城)의 개천을 다스리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

내용

청계천(淸溪川)은 백악산(白岳山) · 인왕산(仁旺山) · 목멱산(木覓山) · 낙타산(駱駝山) 등 여러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과 민가의 하수구에서 흘러나온 물이 모여서 서북쪽에서 동남쪽으로 서울의 중심부를 흐른다.

매년 우기에는 개천이 범람하여 그 피해가 막심하였으므로, 1411년(태종 11) 홍수 피해를 막고자 하천을 정비하기 위한 임시기구로 설치하였다.

이듬해 경상 · 전라 · 충청 3도의 역군(役軍) 5만인을 동원하여 높아진 개천의 바닥을 낮추고 장의동(藏義洞)부터 종묘동(宗廟洞)까지, 문소전(文昭殿)부터 창덕궁(昌德宮)까지는 석축(石築), 그리고 종묘동부터 수구문까지는 목축(木築)으로 둑을 쌓았으며, 교량을 건설하였다.

참고문헌

  • - 『태종실록(太宗實錄)』

  • - 『서울육백년사』제1권(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77)

  • - 『서울통사』상(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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