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승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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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승록
진승록
법제·행정
인물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장, 조선법부학회 회장, 대한민국법전편찬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법조인. 법학자.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5년
사망 연도
1985년
출생지
강원도 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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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장, 조선법부학회 회장, 대한민국법전편찬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법조인. 법학자.
내용

강원도 강릉 출생으로 본적은 함경북도 청진이다.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법학부를 마치고, 1933년 동경고등상업학교 강사로 근무하다가 1934년 이후 보성전문학교의 교수로 재직해오면서 주로 민사법 분야를 강의하였다. 그 동안 일본 고등학교 교원자격을 받았고, 광복이 되자 1945년 12월에는 미군정 사법부가 시행하는 사법 전형에 의하여 변호사 자격을 얻었다.

그리고 미군정 문교부의 문교심의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되었으며, 그 무렵 재직하고 있던 고려대학교의 도서관장으로 보직을 받기도 하였다. 1948년에는 이북 출신으로 구성된 이북인대표단 문교분과위원회의 위원장으로 활동하였고, 1949년에는 그 당시의 법학부 교수들로 조선법학부회를 조직하고 그 회장으로 취임하였으며, 또한 고시위원회 상임고시위원, 대한민국법전편찬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하였다.

1950년에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장으로 자리를 옮겨 서울대학교 대학원 평의원으로 위촉되어 서울대학교의 대학원 운영에도 관여하였다. 1952년에는 고시위원회의 위원장으로 국가고시의 공정하고도 합리적인 관리를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러나 1962년 말경에는 간첩 방조 혐의로 체포되어 보통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아 불복·항소하여 고등군법회의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게 되었고 이에 불복하여 대법원에 상고하였으나 상고기각으로 형이 확정되어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출소하였다.

1978년 12월에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서울에서 변호사 등록을 하여 변호사로서 활약하였다. 이후 진승록 교수 사건은 2015년 자녀인 진미경 교수에 의해 재심 소송이 진행되었고, 2019년 5월 16일 서울고법 형사2부에서

“간첩활동이나 이를 방조하는 행위를 했다고 볼 증거가 거의 없다며 과거 유죄 판결이 잘못됐다”

는 취지의 무죄를 선고받았다. 저서로는 『민법총칙』 · 『물권법』 · 『담보물권』 · 『채권총론』 · 『채권각론』 등이 있고, 그밖에 논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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