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강현면 진전사터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도의선사와 관련된 불탑. 부도.
개설
이 부도는 진전사지 삼층석탑과 함께 무너져 있던 것을 1968년에 다시 세웠으며, 이때 상륜부의 보주도 찾아 복원하였다.
내용
상층기단 면석은 하층기단과 같이 각 면 양쪽에 우주가 1개씩, 중앙에 탱주가 1개씩이 표현되었다. 갑석은 2매석으로 형성되었는데 아랫면에 부연(副椽: 기단의 갑석 하부에 두른 쇠시리)이 마련되었고, 윗면에는 8각으로 4분원의 굄과 낮은 각형의 반전형(反轉形) 굄이 조출되었다. 그 위에 또 하나의 높은 각형 굄이 각출되어 전부 3단으로서 연화(蓮花) 굄석 1매를 받치고 있다.
이 연화대는 8각으로 된 단엽(單葉) 16판(瓣)의 앙련좌인데, 각 연판 안에는 원형의 자방(子房) 주변에 5엽의 화판이 조식되었다. 윗면에는 낮은 각형 1단이 있고 그 위에 높은 4분원의 몰딩(테두리장식)과 각형 1단이 마련되어 팔각 탑신을 받고 있다. 그 윗면 중앙에는 네모난 사리공(舍利孔)이 있어 주목된다.
이 사리공에 대한 조사는 1968년 4월 복원공사 때 이루어졌는데 사리공의 형태(26.5×29㎝, 깊이 9.5㎝)는 구연(口緣)이 뚜렷한 사각형으로서 가장자리에 너비 1㎝, 깊이 0.5㎝의 홈이 오목새김되었고, 밑면은 안으로 굽어졌다. 연화대석 자체가 높지 않으므로 사리공도 깊지는 못하나 너비는 넓은 편이라 하겠다.
연화좌를 별개의 돌로 조성하여 안치한 것은 이 사리공을 시설하기 위한 것이었는바 석조부도에서 이러한 장치를 시설한 유례는 아직까지 조사된 바 없다. 8각 탑신석에는 명문이나 조식(彫飾), 우주 등의 표현이 하나도 없으며, 남쪽 1면에만 문비(門扉)와 같은 전액(篆額)이 있을 뿐이다.
이 전액은 이중으로 오목새김되어 사방 액자 모양의 선 두 줄만이 뚜렷할 뿐 그 내면에는 문고리나 자물쇠 등의 아무런 조각도 없다. 팔각 옥개석의 아랫면 추녀에는 깊고 널찍한 낙수홈이 오목새김되었고 그 내면에 1단의 각형 받침이 조각되어 탑신석 위에 놓여졌다.
옥개석 윗면에는 상륜부(相輪部)를 받치기 위하여 8각으로 된 1단의 각형받침이 각출되었고, 그 가장자리에는 복엽(複葉) 8판의 복련이 조식되었으며, 중앙에는 찰주 1개가 있어 보주석(寶珠石)을 고정시키고 있다. 보주는 1석의 연꽃봉오리 모양의 원형인데 하단 측면에는 단엽 8판의 앙련이 돌려져서 옥개석 윗면의 복련과 잘 어울린다.
부도 바로 앞에는 1석으로 조성된 예배석이 놓여 있는데, 옆면에는 아무런 조각이 없으나 윗면 중앙에 단엽 8판의 연화좌가 장식되었다.
특징
즉, 기단부의 구조가 신라시대의 일반형 석탑과 같은 사각형 2층인 점은 당시 이미 이곳 진전사 경내에는 3층석탑이 건립되어 있어서 그 양식을 따랐던 것이다. 상 · 하층의 양쪽에 있는 우주와 중앙에 있는 탱주 1개까지도 모각한 것으로 짐작된다. 탑신과 옥개석은 신라시대 부도의 전형적 양식인 팔각원당형으로 구성되었다.
사리장법은 일반형 석탑의 격식을 따라 기단부 위에 봉안하였으니 여기의 8각 연화좌는 마치 초층탑신과도 같은 구실을 하고 있다. 이곳 진전사지 삼층석탑(국보, 1966년 지정)만 보더라도 초층탑신에 사리공을 마련하고 있으니, 부도의 경우 이 연화좌는 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별석의 시설로 볼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문화재대관』6 보물 4(한국문화재보호협회, 대학당,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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