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오광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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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에 전승되어오던 탈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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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승되어오던 탈놀이.
내용

2003년 경상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일반적으로 진주오광대라고 하면 진주시내에 살면서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한량들이 모여 놀던 토착적인 오광대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진주지방에는 두 종류의 오광대가 연희되었다.

즉, 현재의 진주시 지역에는 진주에 본거지를 두었던 유랑예인집단(流浪藝人集團)인 솟대쟁이패의 보다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오광대가 있었고, 과거 진주군 도동면 소재지였던 하대리(지금의 晉川市 下大洞)에 전승되었던 보다 농촌적인 「도동오광대(道洞五廣大)」가 있었다.

「진주오광대」는 구전자료에 의하면 100여년 전에 초계 밤마리(지금의 陜川郡 德谷面 栗旨里)의 대광대패가 진주에 와서 공연한 것을 보고 시작되었다 하고, 신반(지금의 宜寧郡 富林面 新反里)의 대광대패가 진주에 와서 공연한 것을 보고 시작되었다고도 한다.

19세기 말 대광대패의 영향을 받아 성립된 「진주오광대」는 진주 고을의 세시적인 대동놀이로 전승되다가 1920년대 말에 쇠퇴했으나, 1930년대 초에 민족주의적인 향토문화부흥운동과 때를 같이하여 다시 재공연되었다.

이 시기의 공연에는 지방의 지식층 청장년들과 기생들도 참여하였다. 1936년 일제의 탄압에 의하여 중단되었다가 광복 이듬해인 1946년에 재연되었다. 1960년대 초에 재연하기 위하여 신길룡(愼吉龍) 주관, 김치권(金致權) 구술, 김준호(金駿鎬) 필사로 만든 연희본인 『오광대각본(五廣大脚本)』(李命吉 所藏本)이 전한다.

이 놀이는 음력 정월보름날 저녁에 놀이되는데, 연희장소는 봉곡동 타작마당거리, 상봉동 정상진정미소마당, 계동 진주청년회앞마당거리 등이었다. 당시 농사를 짓던 진주시 북부지역의 타작마당 같은 넓은 터에서 주로 공연된 것이다. 말년에는 진주운동장·삼포극장 등에서도 공연된 적이 있었다.

연출형태는 다른 탈춤과 마찬가지로 춤이 주가 되고 재담[臺詞]과 몸짓과 노래가 곁들여 연희된다. 꽹과리·북·장구·징·해금·피리·젓대 등으로 주로 굿거리장단을 연주하고 이에 맞추어 덧뵈기춤을 춘다.

그런데 다른 지방의 오광대보다 가락이 다양하여 타령·세마치·도토리·염불 등 변화가 많고, 춤도 덧뵈기춤을 바탕으로 등장인물의 성격에 따라 진춤·문둥춤·중춤 등 다양한 춤을 춘다.

놀이의 구성은 각기 다른 독립적인 주제를 가진 마당[科場]이 이어져 있는데, 각 마당의 놀이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오방신장무(五方神將舞)마당으로 각기 복색을 오방색에 따라서, 호수립(虎鬚笠)을 쓰고 중치막을 입은 동방청제장군(東方靑帝將軍)·서방백제장군(西方白帝將軍)·북방흑제장군(北方黑帝將軍)·남방적제장군(南方赤帝將軍)·중앙황제장군(中央黃帝將軍)이 염불장단에 맞추어 등장하여 각기 동·서·북·남·중앙의 오방위에 서서 느린 굿거리장단에 따라 무언으로 진춤을 춘다. 이것은 오행설에 따른 벽사진경의 의식무라 할 수 있다.

둘째는 문둥이마당으로 각기 청·백·적·흑·황의 오색을 칠한 바가지탈을 쓴 다섯 문둥이가 등장하여 세마치장단에 맞추어 문둥춤을 한참 춘다.

그러다가 투전하는 자리에 무스러미라는 천연두 걸린 아이를 업은 어딩이가 반신불수같이 절룩거리며 나와서 구경하다가 판돈을 훔쳐 달아나는 것을 잡아 다그치자 아들 병을 고치는 데 썼다고 하여 용서하기도 하고, 포졸이 나와서 잡아가기도 한다. 이것은 문둥이의 비참한 생활상을 익살스럽게 표현한 것이다.

셋째는 양반마당으로 말뚝이가 등장하여 채찍으로 다섯 문둥이를 쫓아내고 생원을 부르면 생원·차생원·옹생원이 등장하고, 말뚝이가 이들 양반을 찾아다닌 경로를 말하면서 양반집안의 도덕적 부패상을 폭로하고 양반계층을 비판한다.

넷째는 중마당으로 소무(小巫)가 타령장단에 맞추어 손춤을 추고 있는 곳으로 상좌를 앞세운 중이 나와 소무를 유혹하는 춤을 춘다. 이것은 파계승을 풍자한 마당이라 할 수 있다.

다섯째는 영감·할미마당으로 처첩관계로 인한 가정비극을 표현한 것이다. 생원과 할미가 서로 찾다가 상봉하였는데, 영감이 첩을 데리고 왔다며 할미가 질투하자 영감이 할미를 발로 차서 기절시키고, 의원이 치료하여도 효험이 없어 무당을 데려다가 굿을 한다.

생원이 나와 굿을 중단시키고 여색을 좋아하는 중을 잡아다가 매를 때리고, 중은 중노릇도 못하겠다는 자탄가를 부른다.

넷째마당과 다섯째마당은 대본에 따라서 하나로 합쳐지기도 하고, 중이 처벌을 받는 장면이 영감·할미의 갈등장면 다음에 삽입되기도 하고 호화롭게 팔선녀를 등장시키기도 한다.

「진주오광대」에 소요되는 탈은 오방신장·문둥이·무스러미·어딩이·옹생원·차생원·할미·중·상좌·소무 등 20개 내외이며, 탈을 쓰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로는 의원·무당 등이 있고, 생원·작은마누라 등은 다른 마당에 사용한 탈을 대용한다.

탈의 재료는 바가지가 대부분인데, 그 위에 종이를 여러 겹 붙여서 요철이 드러나게 하여 입체감을 내고 색을 칠한다. 오방신장탈과 포졸탈은 종이로 만든 평면적인 것이다.

「진주오광대」의 이름난 놀이꾼으로는 최선준(崔善俊, 옹생원·어딩이 역, 崔常壽採錄本 口述者)·정종근(鄭鍾根, 소무·중 역, 崔常壽採錄本 口述者)·강석진(姜碩珍, 말뚝이 역, 鄭寅燮採錄本 口述者)·양덕현(梁德現, 할미 역)·신길룡(할미 역)·문장현(文章現, 악사) 등이 있었다. 이들보다 10여 년 후배로 김치권(말뚝이 역, 李命吉所藏本 口述者)이 있었고, 생존한 놀이꾼으로는 이재영(李在榮, 말뚝이 역)이 있다.

「진주오광대」는 오행설에 따른 벽사진경의 의식무인 오방신장무가 있고, 그에 합치되는 5문둥이를 등장시켜서 오광대 상징체계가 비교적 잘 남아 있는 것이 주목된다. 그리고 극내용이 「가산오광대」와 비슷한 점이 많고 서로 가까이 있는 지역이라 양자간에 밀접한 관련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야유·오광대가면극」(최상수, 『경상남도지』, 1963)
「오광대소고」(송석하, 『조선민속』1, 1933)
「진주오광대탈놀음」(정인섭, 『조선민속』1,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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