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교동 고분군 ( )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 교동 고분군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 교동 고분군
고대사
유적
문화재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앞트기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이칭
이칭
창녕교리고분군, 교동고분군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사적(1963년 01월 21일 지정)
소재지
경남 창녕군 창녕읍 교리 129번지
정의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앞트기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개설

교동고분군은 목마산(牧馬山) 북서쪽 기슭에 있으며 인접한 송현동고분군과 함께 창녕읍 교리 일대에 넓게 분포하고 있다. 1963년 1월 21일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가 2011년 7월 28일에 지정 해제되고 ‘창녕 교동 및 송현리 고분군’으로 재지정되었다. 이 고분군의 지정면적은 220,455㎡이다.

역사적 변천

교동고분군은 1911년 일본인 세키노〔關野貞〕의 소개를 시작으로 1917년이마니시〔今西龍〕의 분포조사, 1918년하마다〔浜田耕作〕, 우메하라〔梅原末治〕의 제21·31호분 발굴조사, 1918∼1919년타니이〔谷井濟一〕의 제5-12호분, 제81·91호분이 조사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그 당시 발굴조사보고서는 대부분 미간행 상태였고 고적조사보고서에 실린 제21·31호분이 전부이다. 도리어 이것이 계기가 되어 나머지 고분들도 도굴이 진행되어 전체가 황폐화될 정도로 훼손되고 민간인들의 경작지 개간으로 원상조차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형되었다.

1918년에 조사된 교동 제5-12호분, 제21·31호분과 송현동 제89·91호분에서 출토된 유물이 마차 20대, 화차 2량분에 해당되었다고 한다. 그 가운데는 금동관을 비롯해서 금제귀걸이〔金製耳飾〕, 금·은제 용무늬고리자루큰칼〔龍紋環頭大刀〕, 은제허리띠〔銀製銙帶〕와 띠드리개〔腰佩〕장식, 말띠꾸미개〔雲珠〕, 말띠드리개〔杏葉〕과 뚜껑굽다리접시〔有蓋高杯〕, 긴목항아리〔長頸壺〕등 다량의 토기가 포함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지표조사 자료에 의하면 교동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국도의 서쪽 구릉 상에 70여 기(A군으로 하마다, 이마니시 발굴지역), 동쪽 목마산 기슭에 80여 기(B군으로 타니이 조사지역), 그리고 지금의 송현동고분군에 인접한 지역에 30여 기가 각각 분포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현재 대부분의 고분들이 복원정비가 완료된 상태이다.

내용

광복 후 교동고분군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조사는 1992년 동아대학교 박물관과 2009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서 부분적으로 실시하였다. 그중 동아대학교 박물관이 조사한 고분은 전체 고분군 중에서 A군에 해당하는 목마산 기슭에 위치한 대형분이며 당시 정비복원을 위한 자료수집을 목적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대상은 제1호분과 제3호분이었다. 그러나 조사과정에서 소형분 제2·4·5호분이 주변 지하에서 확인되어 모두 5기를 함께 조사하였다.

조사 당시 봉토는 대부분 삭평되어 원반모양이나 계단모양의 경작지로 변했고 일부 원상이 남은 측면에는 도굴 구덩이가 보이는 등 원상 파악이 매우 어려운 상태였다. 조사과정에서 확인된 고분의 봉토는 중앙의 중심축에서 방사선상(16∼36구역)으로 작업구역을 구획한 유사판축 수법으로 축조되었고 가장자리에는 인두대의 깬돌〔割石〕을 이용한 둘레돌〔護石〕을 둘렀다. 둘레돌 바깥에는 봉토 분할 축조 시 사용된 나무기둥구멍〔木柱穴〕이 180㎝ 등간격을 이루고 직경 20㎝의 기둥구멍은 2∼4개 구멍이 직선상을 이루며 이 기둥구멍을 따라 설치된 둘레돌도 마찬가지로 직선상을 이루어 봉분의 평면이 원형이라기보다는 다각형으로 축조된 것을 알 수 있다. 이 둘레돌 열을 기준하면 제3호분의 경우 직경 25m의 대형분에 속하는 것이었다.

내부 돌방은 북서쪽 또는 북쪽 단벽에 입구를 둔 앞트기식〔橫口式〕으로 제1∼3호분은 비교적 긴 무덤길이 달려 있고 제3호분의 경우 길이 610㎝, 폭 130㎝의 장대한 것이었다. 완만한 경사지에 축조된 제3·4·5호분의 돌방은 완전 지하식이지만 가파른 언덕에 축조된 제1·2호분의 돌방은 생토면을 얕게 굴착한 반지하식이었다. 돌방 제작방식은 깬돌을 이용하여 두 장벽과 구석 쪽 단벽을 먼저 쌓고 나중에 입구 쪽 단벽을 쌓는 순서였다. 하지만 제3호분은 내부에 사각 나무기둥을 양쪽 장벽과 바닥에 6매씩 등간격으로 세우거나 눕혀서 덧널〔木槨〕을 먼저 조립하고 나무기둥 사이에 석축을 배치하는 순서를 가진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墓〕이 변형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길이 720㎝, 폭 130㎝, 높이 220㎝ 규모로 천장에는 장대석 9매를 걸쳐 평천장을 이루고 다른 고분도 마찬가지이다.

바닥은 중앙에 자갈돌을 깔아 철(凸)자형 널받침〔棺臺〕를 설치하고 양쪽 단벽 아래에 공간을 두어 유물을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지만 제3호분은 구석 쪽 단벽 아래는 공간 없이 유물을 배치하였다. 도굴되어 자세하지 않지만 제3호분에서는 남벽에 치우치게 나무널을 안치한 흔적이 확인되었으나 형태는 알 수 없었다.

무덤길은 구획분할 축조 시 남겨둔 공간부로서 바닥에는 점토를 깔고 그 위에 천장 높이만큼 깬돌을 채워둔 형태이며 제1호분은 판석을 세워서 입구를 폐쇄한 후 깬돌을 채웠다. 대분의 입구부가 도굴 통로로 이용되면서 무덤길을 통한 추가장(追加葬) 확인이 어려운 상태였다. 그러나 제1·4호분은 유물의 특징을 통해 어느 정도 선후 구별이 가능하여 추가장을 했던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그밖에 돌방 내부 입구부 아래 바닥 공간에서 제1호분 3명, 제3호분 2명의 순장(殉葬)으로 추정되는 치아와 사람뼈조각이 수습되었다. 제2호분의 경우 구조적으로는 앞트기식돌방무덤〔橫口式石室墳〕형태를 갖추고 은제귀걸이가 출토되는 등 고분이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바닥에 널받침을 설치하지 않고 내부에 대형토기와 말갖춤〔馬具〕이 가득 채워진 점 등을 감안하면, 주위의 대형 제1호분이나 제3호분의 딸린덧널〔副槨〕과 같은 용도인 것으로도 판단되어 주목받았다.

교동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은 은제관식조각·은제허리띠조각·금제굵은고리귀걸이〔金製太環耳飾〕·금은제가는고리귀걸이〔金銀製細環耳飾〕·유리구슬 등의 장신구, 말띠드리개〔杏葉〕·재갈·발걸이 등의 말갖춤류, 쇠낫〔鐵鎌〕·쇠도끼〔鐵斧〕·쇠보습〔鐵犁先〕·쇠자루자귀〔鐵柄附手斧〕등의 농·공구류, 판갑옷〔板甲〕·계갑(桂甲)·관모·쇠화살촉〔鐵鏃〕·쇠투겁창〔鐵矛〕·쇠칼·철검 등의 무기류, 긴목항아리〔長頸壺〕·짧은목항아리〔短頸壺〕·원통모양그릇받침〔圓筒形器臺〕·뚜껑굽다리접시〔有蓋高杯〕등의 소위 창녕식 토기류가 출토되었다.

2009년 교동고분군 주차장 정지사업 중 부지 내에서 발견되어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가 조사한 고분도 앞트기식돌방무덤으로 판명되었는데, 세부 구조나 출토된 유물은 앞에서 기술한 동아대 박물관 조사내용과 동일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의의와 평가

창녕은『삼국지(三國志)』동이전(東夷傳)에 보이는 진한의 불사국(不斯國)으로서 비자화(比自火)·비사벌(比斯伐)이라고도 불렸으며 이곳의 중심부에 교동고분군이 자리잡고 있다. 교동고분군은 인접한 송현동고분군과 더불어 5세기 전반에서 6세기 전반에 걸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고분군은 창녕지역 유력 집단의 수장급 무덤인 대형분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그 주위에 가족이나 친연관계를 가진 자들의 중·소형 무덤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 고분군에서 경주에 분포하는 돌무지덧널무덤 다음으로 많은 양의 신라 계통 금속유물이 발굴되어 그 당시 창녕지역이 신라 중앙과 정치적 관계가 밀접하였음을 보여준다.

참고문헌

『창녕교동고분군』(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2010)
『창녕교동고분군』(동아대학교박물관, 1992)
『慶尙北道 慶尙南道古蹟調査報告』(朝鮮總督府, 1922)
「昌寧校洞古墳群-梅原考古資料を中心とした谷井濟一氏發掘資料の硏究-(穴澤和光·馬目順一,『考古學雜誌』60-4, 1975)
집필자
심봉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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