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사우 및 강당 각 1동이 있다. 1717년(숙종 43) 창건했고 1721년(경종 1) 사액되었다.
배향된 세 사람은 1636년 병자호란 때 화의(和議)를 극력 반대하였다. 인조가 화의하자 이듬해 척화론자(斥和論者)로 몰려 청나라로 잡혀가 갖은 고문과 협박을 받다가 심양으로 압송되어 처형당했다. 후인들이 ‘병자(丙子) 삼학사’라고 부르고, 높은 충절과 고귀한 죽음을 기리었다.
사당은 동향으로 전면 5칸, 측면 3칸이며 전퇴가 있는 맞배집이다. 사당 앞에 내삼문이 있으며, ‘창렬사(彰烈祠)’라고 쓰인 사액 현판이 걸려 있다.
내삼문 아래쪽에는 전면 5칸, 측면 2칸의 평면에 팔작지붕을 한 강당이 있고 앞에는 외삼문이 있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았다. 1979년 12월 19일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