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 합덕제 ( )

당진 합덕제
당진 합덕제
산업
유적
국가유산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에 있는 통일신라 말기 또는 고려 초기의 수리 시설.
이칭
이칭
합덕방죽, 합덕지(合德池), 연제(蓮堤), 연지(蓮池), 연호제(蓮湖堤), 합덕연호(合德蓮湖)
유적
관련 국가
백제, 고려
관련 인물
홍성윤 | 정분
높이
4m
길이
1,771m
둘레
8~9㎞
소재지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시도자연유산
지정 명칭
당진 합덕제(唐津 合德堤)
분류
유적건조물/산업생산/농업/관개시설
지정기관
충청남도
종목
충청남도 시도기념물(1989년 04월 20일 지정)
소재지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성동리 1-41 일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당진 합덕제는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에 있는 통일신라 말기 또는 고려 초기의 수리 시설이다. 당진 합덕제는 당진시 동남부의 곡창지대에 관개하던 호서 지역의 대표적인 수리 시설이다. 현재 남아 있는 석축 제방은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대합덕리 대호마을 앞에서 시작하여 동북쪽으로 합덕리 창말까지 서남~동북 방향으로 축조되어 있다. 총길이 1,771m, 둘레는 8~9㎞에 이르는 거대한 방죽이었다.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에 있는 통일신라 말기 또는 고려 초기의 수리 시설.
발굴 경위 및 결과

당진 합덕제(合德堤)는 당진시 동남부의 곡창지대에 관개(灌漑)하던 호서 지역의 대표적인 수리 시설이다. 현재 남아 있는 석축 제방은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대합덕리 대호마을 앞에서 시작하여 동북쪽으로 합덕리 창말까지 서남동북 방향으로 축조되어 있다. 총길이 1,771m, 둘레는 89㎞에 이르는 거대한 방죽이었다. 제방의 평균 높이는 4m, 상부의 폭은 약 6.5m, 하부는 11~18m이다. 저수 면적은 175 정보[1.73㎢], 주1은 762정보[7.55㎢]로 조선시대의 수리 시설 가운데 최대 규모이다.

당진 합덕제의 축조 기술은 토성(土城)을 쌓는 방식으로 진흙과 나뭇가지, 낙엽을 켜켜이 쌓아 견고하게 다지는 ‘지엽부설공법(枝葉敷設工法)’과 제방의 흙이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지반에 말뚝을 박고 흙을 쌓은 ‘무리말뚝공법’이 사용되었다. 1989년 4월 20일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건립 경위

기원과 역사

당진 합덕제의 기원은 백제 위덕왕[554598] 또는 무왕[600641] 재위 시기에 축조되었다는 설과 후백제 견훤(甄萱)이 쌓았다는 주장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견훤이 군사를 일으켰을 때 기병(騎兵)과 보병(步兵) 9,000명, 군마(軍馬) 500여 마리를 성동산(城東山)에 주둔시키고 보루(堡壘)를 쌓았다고 한다. 그리고 산 밑에 습지를 파서 군마를 먹일 물과 군량미 확보를 위한 시설로 못을 만든 것이 당진 합덕제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연지(蓮池)는 “합덕 땅에 있는데 길이 주2이며, 논 130 결(結)에 물을 댄다”라고 하였다.

『성종실록(成宗實錄)』에는 1473년(성종 4) 영사(領事) 홍성윤(洪允成)의 주청으로 보수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즉 “합덕제는 고려 때부터 쌓기 시작하였고, 조선조에 이르러 정분(鄭苯)이 또 감독하여 쌓았는데, 길이가 2,700여 척이고 일곱 고을이 수리(水利)를 입는다. 그러나 본래 둑이 낮고 약해 이제 또 비로 인하여 터져 무너졌으니 제언별감(堤堰別監)을 보내어 쌓아야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18세기 중엽의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둘레가 41만 1829척이고 깊이는 4척으로 되어 있다.

운영 주체

당진 합덕제의 운영 주체는 몽리 구역의 작인들로 구성된 연제수리계(蓮堤水利契)이다. 18세기 중엽 대홍수로 훼손된 제방의 복구를 계기로 발족된 연제수리계는 제언(堤堰)을 매개로 하는 수리 공동체의 산물이다. 설립 이후 1960년대 해체될 때까지 당진 합덕제의 관리와 관개를 전담하였으며, 여느 수리계와 달리 수세(水稅)를 징수하지 않는 독특한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방죽 내에 20~30정보의 경작지가 있어 매년 여기에서 나오는 도조(賭租)를 재원(財源)으로 충당하였기 때문이다.

관련 민속

당진 합덕제와 관련된 민속문화의 전통은 한발이 닥쳤을 때 홍주목사(洪州牧使)가 주관하는 기우제, 매년 추수 감사제의 성격을 띤 둑제, 그리고 동절기에 얼음이 갈라지는 ‘용갈이[傭耕]’ 현상을 보고 풍흉을 점치는 세시풍속 등이 있다. 아울러 홍수로 터진 둑을 다시 쌓을 때 스님을 묻었다는 인신공희(人身供犧) 설화나, 용충 · 용샘에 얽힌 전설은 수리 시설에 용해된 무형유산의 상징적 의미가 종합적으로 갈무리되어 있다.

의의 및 평가

당진 합덕제는 1963년 예당저수지 준공으로 수리 시설로서의 역사적 소명을 다하였다. 그러나 방죽의 제방은 그대로 보존되어 농경 유산으로서의 가치와 의미가 빛을 발한다. 무엇보다 1,771m에 이르는 제방과 수변공원으로 복원된 연못은 농경 문화유산을 향유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그 유산의 의미를 널리 알리고자 2005년 합덕수리민속박물관이 개관하여, 당진 합덕제의 역사와 수리 · 관개 문화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2017년 10월 국제관개배수위원회[ICID]로부터 인류에게 비약적인 식량 증산과 사회발전을 가져온 역사적인 관개 시설물로 선정, 주3’에 등재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성종실록(成宗實錄)』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여지도서(輿地圖書)』

단행본

성정용, 『당진 합덕제』(충남대학교 박물관, 2002)

논문

강성복, 박종익, 「당진 합덕제의 운영과 농경유산으로서의 가치와 의미」(『남도민속연구』 39, 남도민속학회, 2019)
홍석표, 「합덕방죽에 대한 종합적 고찰」(『내포문화』 5, 당진향토문화연구소, 1993)
주석
주1

논밭 따위가 저수지, 보, 양수장과 같은 관개 시설에 의하여 물을 받게 되는 면적. 우리말샘

주2

길이의 단위. 1척은 한 치의 열 배로 약 30.3cm에 해당한다. 우리말샘

주3

세계적으로 보전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유산으로 등재하는 저수지·댐·수로·보 따위의 관개 시설물. 국제 관개 배수 위원회(ICID)가 2014년부터 지정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수원 축만제와 만석거, 김제 벽골제, 당진 합덕제 따위가 등재되어 있다.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강성복(충청민속문화연구소 소장, 민속학)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