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북도 경원 출신. 1916년 조국광복의 뜻을 품고 만주로 건너가 중국 관청에서 근무하였다.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국권회복운동에 투신하여 길림성(吉林省) 혼춘현(琿春縣)·왕청현(旺淸縣) 등지에서 안중근(安重根)·서재학(徐在學)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였다. 훈춘대한국민회 교제과장 황병길(黃炳吉)이 급진단(急進團)을 조직하는 데 참여하여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1920년 4월 의사단, 포수단, 급진단이 군무부로 통합된 뒤 6월 헌병대가 신설되자 7월 대한독립군 헌병사령관으로서 군무부 중대장에 임명되어 독립군의 군규(軍規) 엄수와 군사(軍事) 정탐의 임무를 수행하는 한편, 독립군 병사 중 100명을 선발하여 헌병을 양성하는 데 진력하였다.
1921년 일본경찰에 붙잡혀 1925년 6월 경성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함흥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1930년 10월 출옥 후 만주 혼춘 지방에서 독립운동을 계속하다가 죽었다.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