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성구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함경도사, 예조정랑, 영월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용구(用九)
  • 지비재(知非齋)
  • 시호충헌(忠憲)
인물/전통 인물
  • 본관평강(平康)
  • 사망 연도1647년(인조 25)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예조정랑|영월군수
  • 출생 연도1605년(선조 38)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임선빈 (공주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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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함경도사, 예조정랑, 영월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용구(用九). 호는 지비재(知非齋). 채흥선(蔡興先)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채정간(蔡廷侃)이고, 아버지는 진사 채진형(蔡震亨)이며, 어머니는 김몽정(金夢禎)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30년(인조 8)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성균관학유·학록·학정·박사, 감찰, 형조좌랑, 정언·지평, 함경도사·예조정랑·영월군수 등을 거쳤다. 그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 두 차례에 걸쳐서 화친을 배척하는 상소를 하였다.

특히, 정묘호란 때에는 남한산성에 달려가 인조를 위문하고 율시 한 수를 지었는데, 이와 같은 그의 존주절의(尊周節義)가 높이 평가되어 1755년(영조 31)에는 통정대부를 증직받았다.

참고문헌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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