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7년(중종 32) 정지운이 『성리대전(性理大全)』에 있는 주희(朱熹)의 인물지성(人物之性)에 대한 설(說)을 취하고, 그 밖의 여러 설을 참고해 그림[圖]을 그리고 거기에 문답을 더해 ‘천명도설(天命圖說)’이라 하였다. 그 뒤 1553년(명종 8)이황(李滉)에게 이 도설의 증정(證正)을 청해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과 소옹(邵雍)의 「선천도(先天圖)」 등의 도설들을 절충한 고증을 받아 이듬해에 신도(新圖)를 완성하였다.
초간본은 판본으로 전해지다가 임진왜란으로 없어졌고, 그 뒤 1640년(인조 18)에 이식(李植)이 민가에서 한 책을 얻어 한진보(韓振甫)가 『구암문고(久菴文稿)』를 간행할 때 함께 펴냈다. 권두에 자서(自序)인 천명도설서(天命圖說序), 이황이 수정(手訂)하기 이전의 천명구도(天命舊圖)와 이황이 수정한 천명신도(天命新圖)가 실려 있고, 권말에는 이황의 천명도설후서(天命圖說後敍)와 이식의 발문이 실려 있다.
1권. 목판본. 규장각 도서와 성균관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제1절 논천명지리(論天命之理), 제2절 논오행지기(論五行之氣), 제3절 논이기지분(論理氣之分), 제4절 논생물지원(論生物之原), 제5절 논인물지수(論人物之殊), 제6절 논인심지구(論人心之具), 제7절 논성정지목(論性情之目), 제8절 논의기선악(論意幾善惡), 제9절 논기질지품(論氣質之品), 제10절 논존성지요(論存省之要)로 구성되어 있다.
대개 제1절에서 제10절까지는 주희의 설로써 태극의 본도(本圖)를 근거로 중용(中庸)의 대지(大旨)를 기술한 것이다. 그림은 천원(天圓)·지방(地方)의 현상을 본떠 위로 천명권(天命圈)을 설정하고 아래로는 인체의 각 부위를 본떠 그렸다.
『천명도설』은 이황과 기대승(奇大升)간의 ‘사칠논변(四七論辨)’의 발단이 되었다. 천명과 인성의 관계를 체계화하는 데 사단칠정(四端七情)의 ‘발(發)’의 문제를 새로 제기하고 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또한, 인간에게 선악의 결정은 스스로의 의식에 의해 좌우되는 것으로 보고, 이를 따르려는 노력으로 성(誠)과 경(敬)을 강조하고 있음은 한국 인성론사(人性論史)에서 선구적 의의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