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1.5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의 보원사(普願寺) 절터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한다. 둥그런 소발(素髮)의 머리에 육계(肉髻)가 팽팽한 원만형의 얼굴, 탄력 있는 가슴의 표현, 벌어진 어깨, 무릎너비가 넓은 육중한 다리 등은 장대한 체구와 함께 9세기 말에서 10세기까지의 불상형태를 반영하고 있다.
불의(佛衣)는 우견편단(右肩偏袒)의 착의법으로 간결한 옷주름을 형성하며, 비교적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고 있다. 양손은 절단되었지만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손모양인 것 같다.
이러한 특징들은 신라 중기(650∼775)의 석굴암본존불상의 양식을 따르고 있는데, 체구가 당당하고 세부의 도식화가 심화되지 않아서 광주철불좌상(廣州鐵佛坐像)으로 이어지는 신라말과 고려 초기의 불상으로 추정된다.
보원사지(普願寺址)에 있는 법인국사(法印國師)탄문(坦文)의 비문에 의하면, 탄문이 고려 광종 즉위년인 949년에 석가삼존금상(釋迦三尊金像)을 조성하고, 또 광종 6년에는 왕의 만수무강을 위하여 삼존금상을 주조하도록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 불상들이 모두 보원사지에 봉안되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으나, 이 철불좌상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라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