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성묘

  • 역사
  • 유적
  • 조선 후기
북한 황해남도 해주시 수양산에 있는 백이와 숙제의 절의를 추모하여 세운 사당.
이칭
  • 이칭수양사(首陽祠), 이제사(夷齊祠)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최완기 (서울시립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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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북한 황해남도 해주시 수양산에 있는 백이와 숙제의 절의를 추모하여 세운 사당.

내용

황해도 해주 수양산(首陽山) 기슭에 소재하였다. 수양사(首陽祠) 또는 이제사(夷齊祠)라고도 불린다.

백이와 숙제는 중국 은(殷)나라 말 주(周) 나라 초기의 현인으로서 의(義)를 지켜 수양산(중국 山西省 永濟縣 所在)에 숨어 살았다고 한다. 조선 숙종 때에 이르러 서원ㆍ사우가 남설되는 풍조에 따라 해주의 유생들이 지명이 같은 해주의 수양산 기슭에 1687년(숙종 13) 사당을 세우고 두 사람을 제향하며 절의를 추모하였다.

1701년에는 황해도 유생들의 청에 의하여 왕이 ‘청성묘(淸聖廟)’라는 어필의 편액을 하사하고, 아울러 ‘산호수양고호(山號首陽古號)'라는 어제시를 지어주었다.

그뒤 1728년(영조 4) 황해도관찰사 이언경(李彦經)이 주자의 글씨인 ‘백세청풍(百世淸風)’의 네 글자를 얻어와 각석하여 묘정(廟庭)에 세우고 그 절의를 숭상하게 하였다. 비석의 음기는 최석정(崔錫鼎)이 찬하였는데, 청성묘의 내력과 백이ㆍ숙제의 절의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1828년(순조 28) 청성묘를 크게 중수하고 세운 청성묘중수비(鯖聖廟重修碑)가 남아있다. 비문은 영돈녕부사 김조순(金祖淳)이 지었고 김유근(金逌根)이 글을 썼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훼철하지 않은 서원 중 한 곳이다.

참고문헌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조두록(俎豆錄)』

  • - 『서원등록(書院謄錄)』

  • - 『여지도서(輿地圖書)』

  • - 『朝鮮金石總覽』(朝鮮總督府,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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