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시험장 ()

축산시험장
축산시험장
산업
단체
축산 시험 연구와 종축의 생산 · 보급을 관장하던 농촌진흥청 산하 기관.
단체
설립 시기
1958년 1월 1일
해체 시기
1994년 12월 23일
설립자
대한민국 정부
설립지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
상위 단체
농촌진흥청
소재지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오목천동
전신
중앙축산기술원
후신
축산기술연구소
발간지
축산시험연구, 연보 등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축산시험장은 축산 시험 연구와 종축의 생산·보급을 관장하던 농촌진흥청 산하 기관이다. 1962년 산업의 발전으로 농림부의 업무가 다양화되자 정부는 1962년 「농촌진흥법」을 공포하고 당시 농림부 소속이던 중앙축산기술원을 농촌진흥청 산하 축산시험장으로 개편하였다. 1969년 종축개량 및 공급 업무는 분리 신설된 농림부 국립종축원으로 이관하였다. 이로써 ‘시험 연구’와 ‘종축의 생산·보급’ 업무로 이원화되었으며, 축산 시험 연구 사업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였다. 1994년 12월 23일 국립종축원과 통합하여 축산기술연구소로 개편하였다.

정의
축산 시험 연구와 종축의 생산 · 보급을 관장하던 농촌진흥청 산하 기관.
설립 목적

1950년 한국전쟁의 피해로 가축사육 두수가 대폭 감소하였고, 축산은 부업 형태로 축종이 다양하고 극히 영세한 실정이었으므로 시험 지도 사업을 통한 축산업 부흥과 발전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변천 및 현황

1949년 1월 6일 중앙농업기술원이 발족하여, 시험부에 처음으로 축산과가 설치되었다. 성환종축장을 성환축산지원으로 개편하고 경주분원, 개풍분원, 화산목장을 편입하였다.

1952년 5월 10일 성환축산지원을 농림부장관 소속의 중앙축산기술원으로 독립 설치하였다. 경주분원과 화산목장은 경주지원과 화산지원으로 개칭하고 개풍분원은 폐지하고, 축산에 관한 시험 연구를 전담하는 독립기관으로 처음 발족하였다. 1957년 6월 15일 농사원 개원과 함께 중앙축산기술원이 축산시험장으로 편입되었다.

1962년 3월 29일 농촌진흥청 축산시험장으로 개편하였으며, 2개 과에서 4개 과로 증설하였다. 대전시험장, 경주시험장, 사천시험장을 축산시험장 각 지장으로 개칭하였다. 1969년 4월 1일 축산시험장을 시험 연구 전담 기관으로 개편하면서 본원을 성환에서 수원으로 이전하였다.

1994년 12월 23일 축산시험장과 국립종축원을 통합하여 축산기술연구소로 개편함으로써 축산시험장 시대를 마감하였다.

주요 활동

1956년 우리나라 최초로 돼지의 인공수정 기술을 개발하였다. 1966년 전국축산인대회와 1968년 권농일(勸農日) 기념식, 1969년 ‘목초의 날’ 기념행사에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참가하여 축산업 진흥 의지를 밝히면서 축산업 발전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1960년대 후반까지 성장이 더딘 한우의 성장 촉진을 위해 인공유를 개발하여 18개월령 체중이 210㎏에서 449㎏로 증가하여 산업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1973년 자체 육성 비육한 쇠고기 전량을 약 5만 달러에 일본에 수출하는 쾌거를 달성하였다. 이러한 기술은 1971년 국민소득 249달러 시 소요되는 쇠고기 4만 3300톤, 1976년 국민소득 389달러 시 소요되는 쇠고기 7만 3900톤 생산 · 공급에 이바지한 성과로 평가받았다. 사료 · 급수 · 환기 등 자동화 시설 개발로 사육 규모 확대에 이바지하였으며, 1972년부터 2년 동안 FAO의 지원을 받아 국내 우유 가공업체를 대상으로 그동안의 유가공 연구 결과와 기술 전수 교육을 실시하여 우리나라 유가공산업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1972년 11월 1일 한 · 독기술협력 초지연구사업 약정 체결로 실시한 한 · 독 초지연구사업은 수원 · 대관령 · 제주 지역에 알맞은 목초 혼파 조합 선발 등 우리나라 초지 농업 역사에서 빠뜨릴 수 없는 커다란 업적을 이룩하였다. 1980년대는 한우와 젖소의 인공수정 기술의 보급 확대로 우수 종축의 확대 보급에 크게 이바지하였고, 또 냉동정액 제조 기술개발 및 고능력 씨수소 확보 보급으로 인공수정 기술의 보편화 기반을 구축하였다.

1980년대는 수정란 이식 기술을 개발 · 보급하였고, 신선 수정란에서 동결수정란 생산으로 기술을 발전시켜, 수정란 이식 기술 보급에 선도적인 기관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의의 및 평가

중앙축산기술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된 축산 연구 기관이었으나 시험 연구보다는 가축과 가금의 생산 보급에 더 주력하였으며 한국전쟁 후 불안정한 상황에서 연구 인력 및 시설, 장비 부족으로 기초적인 시험 연구만 시행하였다. 농사원 시절의 축산 연구 조직은 축산부 가축과, 가공과 시험장을 성환, 대전, 사천, 경주, 제주에 두었으며, 종전 축산시험장의 대관령지장은 지역종합시험장으로 처음 신설된 농촌진흥청 고령지시험장에 편입하여 고랭지농업, 임업, 원예, 축산에 관한 시험 연구를 종합적으로 수행하도록 하였다.

농촌진흥청 소속의 축산시험장은 가축 및 가금의 품종개량 사육법 개선, 영양 사료 및 축산물 이용 가공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도록 하고 서무과, 육종번식과, 영양생리과, 사양기술과, 축산물이용과와 사료작물과를 두었다. 종축장은 가축의 원종축 및 가금의 원종금 생산, 우량 목초의 종자 생산, 가축의 인공수정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였다. 본장에 서무과, 대가축과, 중소가축과, 사료생산과와 대전지장, 사천지장 및 대관령지장을 두었다. 이후 종축장은 1969년 9월 12일자로 국립종축장으로 개편하여 농림부로 이관하였으며 1984년 1월 국립종축원으로 개칭되었다가 1994년 12월 다시 축산기술연구소로 통합되었다. 이 시기에는 축산 기술개발 연구 업무가 본격적으로 수행되었고 종축 생산 보급 업무가 이루어졌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격변의 시기와 경제개발 시기에 국내에 적합한 축산 기술을 시의적절하게 개발 · 보급함으로써 양질의 식량 공급 기틀을 마련한 점은 축산시험장의 역사적 의의라 평가할 수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축산연구 50년사』(축산기술연구소, 2002)
관련 미디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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