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1년(숙종 17)에 해주목사 이창(李昶) 등 지방유림의 공의로 최충(崔冲)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731년(영조 7)에 ‘청성(淸聖)’이라 사액되었으며, 청성묘(淸聖廟)에는 은나라의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의 위패를 모셨다.
또한, 이 서원에는 중국 송나라 때의 대유 주자(朱子)가 ‘百世淸風(백세청풍)’이라고 쓴 기념비가 서 있어 시민들의 발길이 그치지 않았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경 훼철된 뒤 복원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