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11.8㎝, 너비 21.8㎝×14.8㎝. 동경국립박물관 소장. 장방형에 네 모서리를 꽃잎처럼 모를 죽이고, 뚜껑은 고려청동합·자기합·경상(經箱)처럼 윗면의 주연을 비스듬히 모를 죽여 2단형식으로 만들었다.
갑의 내부는 가운데 2칸이 나 있는데 가운데 칸막이가 위까지 올라오지 않고 나지막한 것을 보면 그 위에 접시 같은 속선반을 올려놓았던 것 같다. 실제로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비슷한 형식의 화장갑에는 속선반이 남아 있고, 거기에 여러 개의 조그만 화장용 내합이 들어 있는 예가 있다.
밑바닥을 제외한 전면은 정교한 투각으로 각종 문양을 나타내고, 투각된 상태에서 유약을 입혀 보석처럼 빛난다. 밑짝의 문양은 주문양이 당초문이며, 그 위에 좁은 당초문대의 종속문이 한 줄로 파도모양을 하고 있다. 뚜껑의 주문양은 모란당초문이며 가운데에 능화형을 만들고, 그 속에 모란이 양쪽으로 가지를 벌려 꽃이 활짝 피어 있다.
능화형 외곽에 당초문이 있고 종속문으로 측면에 여의두문대(如意頭文帶)가, 측사면에 밑짝과 같은 당초문대가 있다. 유약은 고려 인종(仁宗)의 장릉(長陵)에서 출토된 청자들과 마찬가지로 전면에 두껍게 입혀져 있으며 환원번조되었고 용융상태도 양호하다. 유약은 투각된 꽃 문양과 어우러져 햇빛을 받은 아침이슬과 같이 영롱하다.
자기의 번조기술은 불길에 의존하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것으로, 더욱이 전면에 정교한 투각이 있을 경우 번조 후의 결과를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특히, 이 갑은 둥근 것이 아니고 육면이 편평한 판상이므로 실패율이 더 많아 세계적으로 그 유례가 매우 드문 것이다.
실제로 이 갑은 상자 밑바닥에 규석받침을 촘촘히 받쳐 50개에 이르고, 뚜껑 안쪽에도 20여 개 정도의 규석받침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밑짝 안쪽 바닥에도 칸마다 10개에 가까운 규적받침 흔적이 있다. 이것은 편평한 뚜껑형이 주저앉는 것을 막기 위하여 뚜껑과 내부 밑바닥 사이에 내화물(耐火物)로 기둥을 만들어 받쳐놓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다른 청자합의 경우와 같이 뚜껑과 밑짝은 덮어서 번조하였기 때문에 뚜껑과 밑짝이 맞닿는 부위의 유약만을 깨끗이 훑어내고 내화토 가는 모래비짐눈으로 받쳐 번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