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건물. 1987년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조선 선조 때 선비인 교하노씨(交河盧氏)의 4형제 노계원(盧繼元) · 노준원(盧俊元) · 노종원(盧從元) · 노일원(盧一元)을 배향하는 사당이다.
이 4형제는 효우(孝友)가 지극하여 당시의 영의정 유성룡(柳成龍)이 그 실상을 선조에게 아뢰니 어필서(御筆書)로 ‘체화당(棣華堂)’이라는 편액을 내려 이것이 당호(堂號)가 되었다.
그 뒤 임진왜란 때 소실되자 1701년(숙종 27)에 후손들이 남일면 가산리에 사당을 세우고 ‘체화당사’라 명명하였으며 1719년에는 그 옆에 체화당사적비를 건립하였다. 그러나 이 사당은 1871년(고종 8)에 철폐되었다.
그 뒤 1967년에 후손들이 현위치에 사당을 재건하고 사적비도 이건하였다. 경내의 건물은 솟을삼문과 사당으로 되어 있고, 내정(內庭)에는 높은 계단이 있어 위계가 형성되어 있다.
평면은 전퇴를 두었으며, 자연석 기단 위에 8각형의 다듬돌 초석을 놓고 원기둥을 세웠다. 공포는 초익공이고, 가구는 1고주 5량이다. 전면 3칸은 모두 띠살문으로 된 4분합문을 설치하였다.
사적비는 팔작집으로 된 비각을 설치하여 보호하고 있다. 청주목사(淸州牧使) 이우겸(李宇謙)이 지은 것으로 1719년(숙종 45)에 세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