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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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각 군영에서 신호용으로 사용하던 대형 기치.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영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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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각 군영에서 신호용으로 사용하던 대형 기치.

개설

주로 국왕이 참여하는 대열병식 때 세우거나, 왕이 궁성 밖으로 행차할 때 어가의 앞에서 선도하게 하였다. 조선 중기 이후 사용되지 않던 것을 1778년(정조 2) 다시 규례를 정비하여 사용하도록 하였다.

각 군영의 초요기는 기폭이 4방 6척, 깃대의 높이가 1장 9척이었고 영두(纓頭)ㆍ주락(珠絡 : 타는 말 머리의 꾸밈새)ㆍ치미(雉尾 : 꿩 꼬리 모양의 꾸밈새) 등의 장식이 붙어 있었다. 바탕은 각 군영에 지정된 고유의 빛깔로 하였고, 언저리에는 오행상생(五行相生)의 색(이를테면 적색에는 청색, 백색에는 황색 등)으로 구름과 불꽃의 문양을 그렸다.

기의 한가운데는 역시 상생의 색으로 칠성(七星)을 그렸는데, 경기감영의 초요기에만은 ‘畿輔(기보)’라고 새겼다.

열병식 때에는 중앙에 훈련도감ㆍ용호영ㆍ기영, 좌편에 금위영, 우편에 어영청, 전면에 수어청, 후면에 총융청의 초요기를 세웠다. 이 기를 빙빙 돌리면 해당 군영의 대장이 달려오고, 휘두르면 본진으로 돌아가거나 계엄을 해제하며, 상하로 끄덕이면 대열이 행진하는 신호였다.

총융청의 초요기는 원래 검은 바탕에 흰 언저리의 기치였으나 1795년수어청이 광주(廣州)로 이동한 뒤에는 단영(單營)이라 하여 바탕색을 황색으로 고치고 ‘摠營(총영)’이라는 글씨를 넣었다. 이로 미루어 다른 군영의 초요기에도 그 군영의 이름을 새겨 넣은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 -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例)』

  • - 『만기요람(萬機要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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