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정로(廷老). 예빈시참봉 최사순(崔士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왕손사부 최복경(崔福慶)이고, 아버지는 감찰 최영(崔韺)이며, 어머니는 목함(睦諴)의 딸이다.
1588년(선조 21) 생원이 되고, 이해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02년 예안현감이 되었고, 1604년 봉상시주부를 거쳐, 1606년 강원도도사(江原道都事)가 되었다. 1607년 강원도도사 재직시 시폐소(時弊疏)를 올렸다.
즉, 강원도 주민들이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극도로 곤궁한데도 왕실은 궁궐축조에 필요한 동량(棟樑)을 조달하고자 경차관(敬差官)을 파견하여 도민들을 가혹하게 독촉하였다. 또한 주민들은 농사를 전폐하다시피하고 선비나 노비까지도 역사에 동원되고 있는 실정이라는 당시의 민폐를 올바로 지적하였다.
이어 궁궐축조의 중지를 주장하였으나 왕실에 의하여 묵살되었고, 이 상소로 인하여 파직되었다. 사관(史官)의 인물평에 따르면 검소하고 효행이 깊었으므로 1632년 나라에서 효자 정려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