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순조 연간에는 안동 김씨의 일당독재에 대한 비판과 조선왕조의 사회적 모순에 대한 비판을 내용으로 하는 괘서들이 출현하였다.
그 중 영남지방에서는 하동·창원·인동 등지의 장시(場市)에서 문무(文武)의 재주를 가지고도 등용되지 못하고 있는 자들에게 장상(將相)의 기회를 주고, 가난한 자들은 부유하게 해 주며, 죄를 짓고 두려워하는 자는 보호해 준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괘서가 출현하였다.
1801년(순조 1) 10월 최광한은 이와 같은 괘서사건에 연루되어 영남 안핵사 한용탁(韓用鐸)에 의하여 공범인 정광선(鄭光善)·이방실(李邦實)·정철손(鄭哲孫)·김맹용(金孟用)·정양선(鄭養善) 등과 함께 유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