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금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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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건너지 못하는 강」 · 「푸른 별 아래 잠들게 하라」 · 「젊은 아들의 마지막 노래」 등의 작품을 낸 작가.
이칭
이칭
금동(琴童)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22년
사망 연도
1995년
출생지
전라남도 함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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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건너지 못하는 강」 · 「푸른 별 아래 잠들게 하라」 · 「젊은 아들의 마지막 노래」 등의 작품을 낸 작가.
내용

1922∼1995. 본명은 금동(琴童). 전라남도 함평(咸平) 태생이나 소년기를 거의 완도에서 보냈다. 완도보통학교와 경성고등예비학교를 거쳐 중앙불교전문학교(동국대 전신)를 졸업했다.

불교전문입학 무렵 처녀작 「누나」를 조선중앙일보에 투고하여 가작으로 입상했는데 이 작품은 경성방송국에서 입체 낭독으로 방송되기도 했다.

불교전문 3학년인 21세 때 슈베르트의 생애를 그린 「미완성 교향곡」을 보고 자극 받아 쓴 「환무곡(幻舞曲)」이 동아일보 제1회 시나리오 현상모집에 당선됨으로써 영화계에 등단하게 된다.

이 작품은 「애련송(愛戀頌)」이란 제목으로 1939년 이효석 각색, 김유영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일제의 지배 아래 민간 영화 제작회사가 거의 문을 닫아 활동 무대를 찾지 못한 가운데 1938년 매일신보 기자 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한 것을 계기로 8년 동안 현장 취재 경험을 쌓고 해방 후 서울신문 사회부장(2년)을 거쳐 독립신문 편집국장(2년), 한성일보 편집 부국장(2년) 등을 역임했다.

광복과 함께 스타 최은희를 배출한 신경균 감독의 「새로운 맹세」(1946)를 써 주목을 받게 되면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 「오 내고향」(1953)·「길은 멀어도」(1959)·「건너지 못하는 강」(1962)·「푸른 별 아래 잠들게 하라」(1965)·「젊은 아들의 마지막 노래」(1970)·「허튼 소리」(1987) 등 많은 오리지널 시나리오와 「흙」(1960)·「표류도」(1960)·「청춘극장」(1967) 등 각색 시나리오를 내놓았다.

그의 작품을 보면 1950년대 초 한때 관심을 가졌던 보편적인 인간의 애정 문제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인물사적 접근과 역사적 탐구로 요약된다.

앞의 계열로 「아, 백범 김구선생」(1960)·「유관순」(1962)·「석가모니」(1963)·「이성계」(1967)·「안중근」(1971) 등이 꼽힌다면, 뒤의 경우는 「이름없는 별들」(1954)·「3·1독립운동」·「8·15전야」(1958)·「동학란」(1966)·「팔만대장경」(1973) 등을 들 수 있다.

그는 60여년 동안 거의 일관되게 격동의 최근세사에서 고대에 이르는 역사적인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불교사상과 독자적인 민족의식의 세계를 보여 주었다.

1965년 시나리오작가협회 회장에 피선된 후 일곱 차례나 역임되었고, 1970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1991년 예술원상 등을 수상했다. 1999년에는 한국예술평론가협회 선정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 영화부문에 선정되기도 했다. 저서로 『최금동 시나리오 문학선집』(전2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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