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김제군수, 남원부사, 예문관직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뒤에 감찰 등 삼사(三司)의 청요직(淸要職)을 거쳐, 외관으로 김제군수·남원부사 등 여러 주·군을 다스렸다. 남원부사를 사퇴한 뒤 영암의 영보촌(永保村)에 내려가 학문연구에 몰두하였는데 이때 존양(存養)이라는 호를 사용하였다.
문종이 즉위하자 그를 불러 예문관직제학에 임명, 그의 학문을 높이 평가하였으나 그는 아직 치사할 나이가 안 되었는데도 연로함을 이유로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당시 풍습으로 볼 때 명예로운 직책을 사임하고 귀향하는 경우가 드물었으므로 동료들은 그의 높은 덕과 행동을 칭송하며, 다투어 시부를 지어주고 노자를 마련하여 주었다. 72세에 죽으니 영암의 주민들이 사당을 세워 제사하고 존양사(存養祠)라 이름지었다.
그는 세종 때 배출된 많은 학자 중 한 사람으로 정치적 격동에 휘말려들지 않고 문신이자 학자로서 명예로운 삶을 마쳤다. 전주의 서산사(西山祠), 남원의 주암서원(舟巖書院), 영암의 녹동서원(鹿洞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참고문헌
- 『태종실록(太宗實錄)』
- 『문종실록(文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산당집(山堂集)』
- 『동유사우록(東儒師友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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