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채 ()

최석채
최석채
언론·방송
인물
해방 이후 조선일보 논설위원, 신문인협의회 부회장, 문화방송사 사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
이칭
몽향, 夢鄕
인물/근현대 인물
출생 연도
1917년 11월 21일
사망 연도
1991년 4월 11일
출생지
경상북도 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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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조선일보 논설위원, 신문인협의회 부회장, 문화방송사 사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
개설

호는 몽향(夢鄕). 경상북도 김천 출생. 1936년 일본 보통문관시험에 합격한 뒤 1940년 3월 일본 주쿄법률학교[中京法律學校]를 거쳐 1942년 8월 일본 주오대학[中央大學]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1977년 2월 경북대학교에서 명예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생애와 활동사항

1942년 3월부터 1945년 8월까지 동경에서 발행된 잡지 『호세이[法制]』의 편집기자를 한 적이 있고, 광복 후 대구에서 발행된 잡지 『건국공론』의 편집부장(1946.3.), 경북신문 편집국 차장(1946.7.)을 거쳐 1946년 12월대구에서 창간된 잡지 『부녀일보』의 편집국장을 지냈다.

건국 후에는 경찰관이 되어 성주·문경·영주 경찰서장 등을 역임하다가 6·25전쟁 중 부산에서 일어난 5·26개헌파동 소식을 듣고 사표를 냈다. 1954년 대구일보 편집국 부국장에 취임하였다가 이듬해 2월 대구매일신문사로 옮겨 편집국장이 되었으며, 6개월 후인 5월부터 주필직을 맡았다.

1955년 9월 자유당 정권이 정치행사 때마다 학생들을 동원하여 학업에 지장을 주고 있으므로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사설을 쓴 것이 필화가 되어 신문사는 백주에 테러를 당하고, 그는 구속되었다가 30일간 옥고를 겪고 출감한 뒤 법정투쟁 끝에 1956년 5월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1959년 10월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되어 4·19혁명을 전후한 시기에 언론투쟁을 전개하였다. 1960년 3월 17일자에 그가 쓴, 3·15부정선거를 규탄한 사설 「호헌구국운동 이외의 다른 방도는 없다」는 명논설이라는 평을 받았다.

1960년 9월 경향신문 편집국장에 취임하였다가 1961년 1월 다시 조선일보 편집국장이 되었으며, 10월 논설위원으로 자리를 옮겨 1965년까지 재임하며 주필직을 맡았다. 1964년 4월 신문편집인협회 부회장에 피선되어 언론파동 때는 언론윤리위원회법 반대투쟁위원회 실행위원의 핵심으로 앞장서서 악법을 반대하는 논리를 전개하였다.

조선일보 주필이 된 지 10개월 후인 1966년 4월 신문편집인협회 제3대 회장에 선출되어 1971년 1월까지 재임하는 동안 협회의 지위를 크게 향상시켰다.

조선일보 논설위원과 주필로 재임하는 동안에는 5·16군사정변의 기세를 업고 현역군인들 80여 명이 당시 최고회의 건물 마당에서 군사혁명 지지 및 민정참여를 촉구하는 데모를 하자 사설 「일부 군인들의 탈선행동에 경고한다」(1963.3.16.)를 1면 제호 바로 옆에 4호활자로 싣는 신문사상 파격적인 집필을 하였으며, 이어서 「비상사태임시조치법」으로 정치비판이 봉쇄되자 무사설 12일간(3.17.∼3.28.)을 관철시켰다.

1971년 12월 또 하나의 악법인 「국가보위법」이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되자 이에 대해 지지 보도를 하라는 정부의 압력을 받았으나 굴하지 않고 주필직을 사임하였다. 1972년 4월 문화방송사 회장에 취임하였는데, 1974년 5월 문화방송사와 경향신문사가 통합되면서 회장이 되어 1980년 7월까지 재임하였다.

그 사이 5·16장학회 이사장, 아시아신문재단 한국위원회 위원장도 맡았다. 1981년 4월부터 1987년 4월까지 대구매일신문사 명예회장으로 6년 동안 「몽향칼럼」을 계속 집필하였고, 성곡(省谷)언론문화재단 이사장을 겸임하였다. 1988년 11월 문화방송사 사장으로 선임되었으나 오래 재임하지는 못하였다.

저서로는 『서민의 항장(抗章)』(1956)·『일제하 명논설집』(1975)·『한국의 신문윤리』(공저, 1965 )·『속 서민의 항장』(1990) 등이 있다. 별세 후 한국신문편집인협회에서 본적지인 김천시 조마면에 추모비를 건립하고, 그가 생전에 쓴 글을 엮은 『지성감민(至誠感民)』·추모문집 『낙동강 오리알』을 출판하였다. 1952년 화랑무공훈장, 1971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언론 부문), 1977년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참고문헌

『인물한국언론사』(정진석, 나남출판,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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