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대관령 서낭당(성황사)은 대관령 산신당(산신각) 서쪽 약 30m 거리에 있다. 현판에는 ‘大關嶺國師城隍祠(대관령국사성황사)’라고 쓰여 있다.
당우(사당)는 건평 5평 정도의 기와집이며, 내부 정면 벽에는 국사서낭 신상(神像)이 걸려 있다. 신상에는 백마를 타고 궁시(弓矢 : 활과 화살)를 메고 있는 서낭신과 말고삐를 잡고 있는 시종, 그리고 그 앞뒤에 호랑이가 호위를 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고 ‘大關嶺國師城隍大神(대관령국사성황대신)’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당 앞에는 서낭의 심부름을 하는 하위신인 ‘수비’를 모시는 수비당(또는 수구당)이 돌형태로 되어 있다. 현재의 당우는 1944년에 중건된 것인데, 그 역사는 확실하지 않으나, 적어도 천 년 이상 된 강릉단오제의 유래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관령국사서낭은 대관령산신과 강릉단오제의 주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산신각은 대관령성황사에서 동북쪽에 있다. 현존하는 당우(堂宇)는 지은 지 40∼50년밖에 되지 않은 것 같으나, 『임영지(臨瀛誌)』와 『동국여지승람』 등에 전하는 대령산신(大關山神: 대관령산신)에 대한 기록으로 보아 그 역사는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곳에 모시고 있는 산신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조선조 광해군 때 허균(許筠)의 시문집인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 김유신(金庾信)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일반적으로 주민들도 그렇게 믿고 있다. 건물은 한 평 남짓한 조그만 골기와 맞배지붕의 당으로서 현판에 ‘山神堂(산신당)’이라고 쓰여 있다.
왼쪽 기둥에는 ‘應天上之三光(응천상지삼광)’이라고 씌어 있고, 오른쪽 기둥에는 ‘降人間之五福(강인간지오복)’이라고 씌어 있다. 신당 안에는 ‘大關嶺山神之神位(대관령산신지신위)’라는 위패와 함께 백발노인이 옆에 범을 거느리고 있는 산신도가 있다.
제의는 단오제 일정에 의하여 행해지는데, 음력 4월 15일 국사서낭제를 지낸다. 이 날은 대관령국사서낭과 여서낭인 정씨 집 딸이 혼배(婚配:혼인)한 날이기도 하다. 먼저 산신제를 지낸 뒤 서낭제를 지내는데, 홀기(笏記:의식에 대한 여러 절차)를 부르며 헌작(獻爵), 독축(讀祝)으로 유교식 제사를 올린 다음 서낭당 근처에 신목(神木, 신간)을 베러 간다.
그런 다음 신간과 위패를 모시고 요란한 무악을 울리면서 산을 내려와 일행은 중간지점인 구산서낭당에서 간단한 제사를 올리고 굿을 한 다음 국사여서낭의 생가인 정씨가(鄭氏家)에 잠시 들렀다가 강릉시 홍제동 대관령국사여성황사에 도착, 서낭 내외를 합사(合祠 : 둘 이상의 혼령을 한 곳에 모아 제사함.)한다.
이곳에서 5월 3일까지 부부가 함께 있고, 5월 4일부터 5월 6일 소제(燒祭 : 마지막 절차로서 제사상에 있던 신간과 호개등, 지화 등을 태우는 의식) 때까지의 남대천 단오제장에 있다가, 소제가 끝난 다음 다시 국사서낭은 대관령국사성황사로, 여서낭은 대관령국사여성황사로 각각 돌아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