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남도 온성 출신.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에 가입, 활동하였다. 1920년 9월 노령(露領)으로 옮겨 12월경 그곳 시지미에 있는 강용궁(姜龍宮)의 집에서 김학섭(金學燮)·강병관(姜秉官)·최시능(崔時能)·문창학(文昌學) 등 10여 명과 함께 대한독립군결사대(大韓獨立軍決死隊, 가칭: 임시대한독립군)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국내에 잠입, 일제와 투쟁하기로 결의하였다.
우선 웅기의 경찰서와 금융조합을 습격하여 무기와 군자금을 마련하기로 하고, 무기책임자 강병관이 러시아군으로부터 기관총·소총·권총·탄약 등을 구입하여 각 단원이 소총 1정과 탄약 150발, 폭탄 두 개씩을 분배, 무장하였다.
1921년 1월에 대장(隊長) 김학섭의 인솔로 국경지대인 혼춘현(琿春縣) 홍룡구(紅龍溝)에 도착하여 경비상황을 살펴보니 경계가 삼엄하여 웅기까지 도달하기가 불가능함을 알고 계획을 변경하여 함경북도 신건원주재소를 습격하기로 하였다.
대원을 3대(隊)로 편성하고 그곳 지리에 밝은 문창학을 선두로 깊은 밤중을 이용, 주재소를 습격하여 일본경찰을 사살하고 주재소 숙소를 파괴하였으며 청사에 폭탄을 던지는 등 치열한 전투를 전개하다가 적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