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동주(東州: 지금의 강원도 철원). 자는 몽수(蒙叟). 아버지는 봉익대부(奉翊大夫) 최문립(崔文立)이며, 어머니는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홍진(洪진)의 딸이다.
1289년(충렬왕 15) 15세에 사마시에 합격한 뒤 1296년에 도재고판관(都齋庫判官)에 보직되어 내시(內侍)에 속하였고, 1299년에 신호위별장(神虎衛別將)으로 견룡행수(牽龍行首)에 임명되었다.
다음 해에 좌우위장군(左右衛將軍)에 임명되고, 1302년에 문관으로 회복되어 조현대부 군부총랑(朝顯大夫軍簿摠郎)이 되었다. 뒤이어 전리총랑 판사영서사(典理摠郎判司盈署事)로 옮기게 되었다.
1308년(충선왕 즉위년)에 또 무관직으로 바뀌어 좌우위대호군(左右衛大護軍)이 되었으며, 다음해에 나주목사가 되었다. 1312년에 철원부사를 거쳐 1314년에 공주목사로 옮겼고, 다시 철원부사를 지내다가 면직되었다.
1316년(충숙왕 3) 관직에 회복되어 정윤(正尹)에 임명되고 원윤(元尹)에 승직되었다. 1325년 통헌대부 지밀직사사 우상시 상호군(通憲大夫知密直司事右常侍上護軍)에 임명되었는데,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천성이 정직하고 진실하였으며, 평생 불교를 독실히 믿었다. 최운은 첨의(僉議)였던 송빈(宋玢)의 딸에게 장가갔으나 부인이 일찍 죽자 다시 임수(任綬)의 딸에게 장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