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을 지낸 최승로(崔承老)의 손자로, 최숙(崔肅)의 아들이다.
1020년(현종 11) 천령절(千齡節)을 하례하기 위하여 거란에 다녀와서 태자우서자(太子右庶子)가 되고, 1030년에 중추사(中樞使)을 거쳐 1034년(덕종 3) 호부상서가 되었다.
이 해 정종이 즉위하자 이부상서가 되었으며, 1036년 상서좌복야 중추사(尙書左僕射中樞使)에 오르고, 이듬해에는 참지정사를 겸하였다. 1043년(정종 9) 문하시랑 동내사문하평장사 판상서호부사(門下侍郎同內史門下平章事判尙書戶部事)에 임명되고, 뒤에 태사 문하시중(太師門下侍中)을 역임하였다.
일찍이 고려 태조의 「훈요십조(訓要十條)」가 병화로 망실되었는데, 최항(崔沆)의 집 서고에서 훈요를 발견하여 바침으로써 후세에 전하여지게 되었다고 한다. 문종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순공(順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