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해일(海日). 호는 단사(檀史). 경상북도 울진 출신. 1910년 이후 만주로 망명, 1915년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졸업하고 이 학교의 교관, 흥업단(興業團) 간부 등을 역임하였다.
1919년 김좌진(金佐鎭)·서일(徐一) 등과 함께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를 조직하고, 여단장으로 청산리전투에 참전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1921년 시베리아로 건너갔던 김규식(金奎植)·고평(高平) 등을 맞아 이범석(李範奭)과 함께 만주 연길현(延吉縣)에서 고려혁명군(高麗革命軍)을 창설하여 사령부 부관직을 맡아 계속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30년부터는 독립군 자활이론(自活理論)을 제창하여 둔전제(屯田制)를 실시하고 병농일치(兵農一致)의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뒤 길림성(吉林省) 등지에서 대종교(大倧敎)를 시교(示敎)하며 지하운동을 하다가 일본군의 만주침입으로 피신하여 연길현 등지에서 지하운동을 전개하였다.
광복이 되어 귀국하여 대동청년단(大同靑年團) 훈련대장으로 활동하였다.
1968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