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흥해(興海). 자는 문원(文源). 아버지는 최계동(崔繼潼)이다.
1528년(중종 23)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540년 고성현령 재직시 농민들의 요역(徭役)을 가볍게 하여 선정을 베푼 공으로 상을 받았다.
1542년 고성에 기근이 들자 별도로 음식을 장만하여 굶주린 사람을 살리는 데 정성을 다하여 표창을 받았다. 1555년(명종 10) 남치근(南致勤)이 전라도방어사로 부임할 때 나주목사로 있으면서 병으로 환영하지 못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장살당하였다.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갈 때 청렴결백하게 일을 처리하여 조정에서 그의 현명함을 알고 더욱 애석하게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