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량 임란 관련 고문서
산 우뚝한 모양 [최] 높고 큰 모양 [최]
부수 山 총획 11
적다 [희] 바라다 [희]
부수 巾 총획 7
밝다 [량] 믿다 [량]
부수 亠 총획 9
북쪽 [임] 북방 [임]
부수 士 총획 4
어지럽다 [란] 난리 [란]
부수 乙 총획 13
중요하다 [관] 관계하다 [관]
부수 門 총획 19
잇다 [련] 합하다 [련]
부수 耳 총획 17
옛 [고] 오래되다 [고]
부수 口 총획 5
글월 [문] 무늬 [문]
부수 文 총획 4
글 [서] 쓰다 [서]
부수 曰 총획 10
- 역사
- 문헌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 국가문화유산
- 명칭 최희량 임란 관련 고문서 (崔希亮 壬亂 關聯 古文書)
- 분류기록유산/문서류/관부문서/첩관통보류
- 소재지 전라남도 나주시 고분로 747 (반남면, 국립나주박물관)
- 웹페이지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123606600000
- 위도35.0160601
- 종목 보물(1979년 07월 26일 지정)
- 지정기관국가유산청
- 집필 1995년
- 이정섭 (문화재관리국,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최희량 임란관련 고문서 중 첩보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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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무신 최희량이 정유재란 때 왜적을 격파한 승전보고서목을 모아 엮은 서첩.
내용
① 최희량임란첩보 : 첩장(帖裝)으로 19절(折)이며, 표지에는 ‘崔逸翁破倭報捷元本(최일옹파왜보첩원본)’이라 묵서(墨書)로 쓰여져 있다. 1598년(선조 31) 3월부터 7월 사이에 최희량이 흥양현감으로 재임시 전라좌도수군절도사, 통제사 등에게 첨산(尖山)·고도(姑島) 등의 승첩을 7차에 걸쳐 올렸는데, 이에 대한 수사나 통제사의 제사(題辭)가 있다.
이 서첩 후미에 이은(李溵)·조명정(趙明鼎) 등 8인의 발문이 붙어 있다. ② 교지 : 낱장으로 총 9장이다. 5장은 선조 때 최희량이 받은 사령교지이고, 1장은 최희량이 죽은 뒤 내린 병조판서 증직교지이며, 1장은 고종 때 내린 사시교지(賜諡敎旨)이며, 2장은 그의 아내에게 내린 증직교지이다.
시호망은 3장으로, 1871년(고종 8) 시호 내릴 것을 청할 때의 문서이다.
의의와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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