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량 임란 관련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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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무신 최희량이 정유재란 때 왜적을 격파한 승전보고서목을 모아 엮은 서첩.
국가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정섭 (문화재관리국,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최희량 임란관련 고문서 중 첩보서목 미디어 정보

최희량 임란관련 고문서 중 첩보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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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무신 최희량이 정유재란 때 왜적을 격파한 승전보고서목을 모아 엮은 서첩.

내용

197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부속자료로 교지(敎旨)·시호망(諡號望) 등 고문서가 첨가되어 있다. 종류별로 구성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최희량임란첩보 : 첩장(帖裝)으로 19절(折)이며, 표지에는 ‘崔逸翁破倭報捷元本(최일옹파왜보첩원본)’이라 묵서(墨書)로 쓰여져 있다. 1598년(선조 31) 3월부터 7월 사이에 최희량이 흥양현감으로 재임시 전라좌도수군절도사, 통제사 등에게 첨산(尖山)·고도(姑島) 등의 승첩을 7차에 걸쳐 올렸는데, 이에 대한 수사나 통제사의 제사(題辭)가 있다.

이 서첩 후미에 이은(李溵)·조명정(趙明鼎) 등 8인의 발문이 붙어 있다. ② 교지 : 낱장으로 총 9장이다. 5장은 선조 때 최희량이 받은 사령교지이고, 1장은 최희량이 죽은 뒤 내린 병조판서 증직교지이며, 1장은 고종 때 내린 사시교지(賜諡敎旨)이며, 2장은 그의 아내에게 내린 증직교지이다.

시호망은 3장으로, 1871년(고종 8) 시호 내릴 것을 청할 때의 문서이다.

의의와 평가

이 서첩과 문서들은 임진왜란 당시의 전황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사료이며, 고문서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이다.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가흥리의 최경수가 소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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