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5.5m. 현재 원래의 모습을 갖추고 원래의 위치로 추정되는 소양로 한복판에 서 있다. 주변에 민가에 들어서 있어 어느 절에 속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며, 6 · 25 전쟁 때 심하게 손상되었다. 아랫부분이 파묻힌 채 1층 받침돌만 나타나 있어 받침 부분의 구조가 1층인지 2층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석탑은 여러 부재를 화강암으로 만들었다. 받침돌의 면석(面石)은 4장의 널돌로 구성하였고, 면석 위의 덮개돌은 1장의 널돌로 덮었지만 파손이 심하고 많이 닳아서 세부의 모습을 알 수 없다. 받침돌의 덮개돌 위에는 몸돌을 직접 놓지 않고 1장의 널돌을 굄돌로 놓은 뒤에 몸돌을 받치도록 하였다. 이 굄돌은 연꽃을 위로 새긴 앙련대(仰蓮臺)로, 연꽃의 꽃잎은 모퉁이에 이를수록 비스듬히 새겨 고려시대에 나타난 연꽃무늬 배열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특히 굄돌을 따로 끼운 것은 이전 시기 석탑의 덮개돌 윗면에 둔 몸돌 굄대를 대신한 것으로, 이와 같은 연꽃무늬의 굄돌을 끼운 것이 고려시대 석탑의 특이한 모습 가운데 하나이다.
탑신부(塔身部)는 여느 일반적인 석탑과 같이 몸돌과 지붕돌로 구성되었다. 1층 몸돌만 하나의 돌로 만들었고, 그 외의 지붕돌과 그 위의 몸돌은 특이하게 하나의 돌로 만들었다. 1층 몸돌은 매우 높은 편으로, 각 면에는 좌우에 모서리 기둥을 얕게 새겼다. 2층 이상의 몸돌은 1층 몸돌에 비해 높이가 거의 1/5 정도로 낮아졌지만, 모서리 기둥이 가지런하고 너비도 알맞은 체감률을 보여 우아한 기품을 보인다.
각 층의 지붕돌은 처마와 처마가 맞닿은 전각(轉角) 부분이 많이 손상되었지만, 나머지 부분은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대체로 윗면은 평박(平薄)한 편으로 몸돌 굄이 있고, 아랫면은 제법 높지만 둔중(鈍重)하지는 않다. 곧 낙수면의 경사는 완만하고 추녀는 높이 올려져 전각의 반전은 경쾌해보인다. 추녀에는 낙수홈이 오목새김되었고, 아랫면의 받침은 1층~3층은 6단이지만 4층 이상은 5단이다. 6단의 지붕돌 받침은 다른 석탑에서는 볼 수 없는 이 석탑만의 특징이다. 상륜부(相輪部)는 현재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이 석탑은 받침돌이 넓고 큰 데에 반해, 몸돌과 지붕돌은 낮고 작은 편이다. 다만, 1층 몸돌을 높게 하여 비례의 불균형을 보충하면서 오히려 안정감을 준다. 건립 시기는 지상에 드러난 받침 부분의 구성 방식이나 굄돌에 조각된 앙련과 삽입 방식 등 세부 수법으로 보아 고려 중기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