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북한 평안남도 안주군에 있었던 조선후기 정묘호란 당시 순절한 남이흥과 수하 장수들을 배향한 사당.
내용
1627년(인조 5) 후금(後金 : 뒤의 淸)이 침입하자, 당시 평안병사였던 남이흥은 인근 수령들을 규합하여 안주에서 이를 저지하다가 전몰하였다.
제향인물을 보면, 남이흥을 주벽(主壁)으로 모시고 수하 장수인 평안우후(平安虞候) 박명룡(朴命龍), 안주목사 김준(金浚, 또는 俊)을 병향(並享)하였다. 강계부사 이상안(李尙安), 구성부사(龜城府使) 전상의(全尙毅)ㆍ이희건(李希建), 영유현령(永柔縣令) 송도남(宋圖南)은 서무(西廡)에 배향하였다.
그리고 개천군수(介川郡守) 장돈(張暾), 태천현감(泰川縣監) 김양언(金良彦), 맹산현감(孟山縣監) 송덕영(宋德榮), 훈련봉사(訓鍊奉事) 김언춘(金彦春)은 동무(東廡)에 배향하였다.
충절을 표창하기 위하여 국가에서 건립했으므로 1871년(고종 8) 대원군에 의한 서원철폐 때에도 그 훼철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서원등록(書院謄錄)』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