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익부

  • 역사
  • 제도
  • 조선 전기
조선시대 원종공신(原從功臣)을 위하여 설치된 관서.
제도/관청
  • 설치 시기1466년
  • 폐지 시기1506년(연산군 1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성준 (수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3월 12일
충익부등록 미디어 정보

충익부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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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원종공신(原從功臣)을 위하여 설치된 관서.

내용

원종공신은 이성계(李成桂)가 즉위하여 잠저(潛邸) 때 시종(侍從)의 공이 있던 문무양반 · 잡리(雜吏) · 천례(賤隷) 등을 광범위하게 논공행상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다.

원종공신 1등은 양반, 2·3등은 잡인(雜人)으로 구분하였으며, 태종 때에도 많은 원종공신이 탄생하였다. 공신이라고 할 때 원종은 포함시키지 않기도 한 것은 그만큼 수가 많아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초기의 개국(開國) · 정사(定社) · 좌명(佐命) 3공신의 정공신(正功臣)에 한하여 교서(敎書)와 녹권(錄券)을 주었으며, 원종공신에게는 녹권만 주었다. 원종공신의 아문(衙門)은 1456년(세조 2) 6월 충익사(忠翊司)를 두고, 7월 이속(吏屬)으로 영(令) · 사(史) 10인을 정원으로 하여 1년 간격으로 1인씩 9품으로 거관(去官)하였다.

이 해 8월 충익사에 도사 2인을 두고 원종공신과 그 자손을 임명하였다가 1466년 충익사를 충익부(忠翊府)로 승격시키고, 종2품 아문으로 하여 도사 2인을 그대로 두었다.

1506년(연산군 12) 충익부의 도사를 혁파하고, 충익사라 격하하여 무록관(無祿官) 2인을 두었다가 그 뒤 충훈부(忠勳府)에 병합되고, 광해군 때 잠시 독립관청이 되었다가 곧 병조에 소속되었으며, 인조 때 충훈부, 1676년(숙종 2) 병조, 1680년 충훈부, 1689년 다시 병조 등으로 폐합되었다가 1699년 충훈부에 합쳐졌다.

참고문헌

  • - 『세조실록(世祖實錄)』

  • - 『성종실록(成宗實錄)』

  • - 『중종실록(中宗實錄)』

  • - 『명종실록(明宗實錄)』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경국대전(經國大典)』

  • - 『대전회통(大典會通)』

  •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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