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충장공 김덕령(金德齡)과 그의 처 흥양이씨(興陽李氏), 형 덕홍(德弘)과 아우 덕보(德譜) 등 일가족의 충·효·열을 기리는 비와 비각이다.
비는 1789년(정조16)에, 비각은 1792년에 세운 것인데, 비각은 그 뒤 몇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비각 앞면에는 전주부윤 한용구가 쓴 ‘正祖御製綸音(정조어제윤음)’이 걸려 있고, 비각 내부 우측에 ‘충효리 비각 상량문’, ‘충효리 비각 중수기’의 기록문들이 있다.
김덕령(1567∼1596)의 본관은 광주(光州), 붕섭(鵬燮)의 아들로 자는 경수(景樹)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듬해 담양부사 등에 의해 의병장에 천거되어 익호장군(翼虎將軍)의 호를 받았고 권율의 휘하에 들어가 일본군의 전라도 진출을 막기 위해 고성 지방을 방어하였다.
1596년 충청도 홍성에서 일어난 이몽학(李夢鶴)의 난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를 받고 잡혀가 문초를 받던 중에 옥사하고 말았다. 후일 좌찬성을 추증받았으며 충장(忠莊)이란 시호를 받았다. 형인 덕홍은 고경명을 따라 금산싸움에 참전하여 전사하였다.
비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 맞배지붕이며 삼문과 담장으로 둘러져 있다.